항목 ID | GC02401312 |
---|---|
한자 | 金遇洙 |
영어음역 | Gim Usu |
이칭/별칭 | 경연(景淵),하재(下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연(景淵), 호는 하재(下齋). 아버지는 김필순(金弼淳)이고, 어머니는 여주이씨로 첨지중추부사 이정진(李鼎搢)의 딸이다. 부인은 한양조씨로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후손인 학파(鶴坡) 조성복(趙星復)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우수(金遇洙, 1804~1877)는 어려서부터 의표(儀表)가 단정하였고, 겨우 말을 할 무렵부터 글자의 뜻을 이해할 만큼 총명하였다. 장인인 조성복에게 수업하여 경전자집(經傳子集)과 육경고문(六經古文)에 두루 통하였다. 1828년(순조 28)과 1831년(순조 31) 향시에 합격하였고, 1835년(헌종 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류치명(柳致明)을 사사하는 한편 후진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이 내려지면서 1871년(고종 8) 사액 서원마저 훼철되자 기주(箕疇) 정민병(鄭民秉, 1800~1882)·김기선(金驥善, 1806~1884)과 함께 철회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여강서원(廬江書院)이 훼철될 때 안동부에 들어가서 항쟁하다가 하옥되었다. 그 뒤로는 세사(世事)에 뜻을 버리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하재집(下齋集)』 6권 3책이 전한다. 이 가운데 「서유응강제생(書諭應講諸生)」은 후학들을 훈계하며 가르친 내용으로, 학문을 닦고 독서하는 데 성리(性理)에 대한 이해가 선결 조건임을 강조하였다. 이외 「이기(理氣)」·「성정(性情)」·「태극도오행설(太極圖五行說)」·「해박도체(解剝圖體)」 등은 성리학과 관련된 논설들로, 이기와 심성(心性)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만물의 생성 및 운행 원리 등을 언급하고 있다.
「임천서원청액복향의소(臨川書院請額復享擬疏)」는 김성일(金誠一)을 배향하던 임천서원을 사액하여 줄 것을 건의하는 내용으로, 이황(李滉)의 제자인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류성룡(柳成龍) 등은 모두 사액 서원에 배향되었데, 같은 제자인 김성일만이 제외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묘소]
묘소는 안동시 남쪽 가지산(加芝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