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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19
한자 金-亻-政-
영어음역 Gim Jeong
이칭/별칭 사달(士達),노봉(蘆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별
생년 1670년연표보기
몰년 1737년연표보기
본관 풍산
대표관직 제주목사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사달(士達), 호는 노봉(蘆峯). 고조할아버지는 유연당 김대현(金大賢)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학문과 문장으로 사림의 중망을 받았던 학사 김응조(金應祖)이며, 할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시행(金時行)이다. 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을 지낸 김휘봉(金輝鳳, 1643~1683)이고, 어머니는 봉화금씨로 성성재 금난수(琴蘭秀)의 증손녀이자 목사 금개(琴愷)의 손녀이며, 참봉 금성휘(琴聖徽)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정(金人+政, 1670~1737)은 안동 서후면 암랑동의 학사정사(鶴沙精舍)에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가 역병에 걸리자 흙으로 떡을 빚어 하늘에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으며, 또 이웃에게 소 한 마리를 빌려와 아버지의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1683년(숙종 9) 14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1685년 상을 마치자 예안에 사는 오음(梧陰) 성문하(成文夏, 1638~1726)에게 학업을 청하였다. 이에 성문하가 『주역(周易)』 한 질을 주자 도산서원으로 들어가서 보름 만에 다 베끼고 외웠다고 한다.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이해 겨울 영주시 북쪽 노봉산 아래 오록리로 이거하여 신담(薪潭) 가에 염각(簾閣)을 지은 뒤 둘째 형과 함께 경전을 강마하였다. 1708년(숙종 34) 문과에 급제하여 내섬시직장(內贍寺直長), 1709년 5월 서빙고별제, 7월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다. 1710년 경성판관에 제수되었으나 칠순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기 위하여 체직을 청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1712년(숙종 38) 정월 함경도도사에 제수되자 이번에도 노모를 이유로 사직하려 하자 어머니가 “두 번이나 연달아 사직하는 것은 직분이나 의리에 온당치 못하다”라고 하여 부임하였다. 이때 관북의 고사(故事)·도사(都事)·평사(評事)가 남북도의 일을 나누어 관장하고 있었는데, 화재 때문에 문서들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에 있자 3일 만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1720년(숙종 46)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치렀다.

1723년(경종 3) 5월 병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 10월 옥천군수에 제수되었다. 1724년 봄 화재가 거듭 발생하여 민가 600여 채와 관가 건물 수백여 칸이 불탔으나 1년도 되지 않아 모두 복구해 놓았는데, 1725년 봄 이조판서 민진원(閔鎭遠)이 유배지에서 돌아가다가 이 일을 전해 듣고 임금께 계달하니, 임금이 특별히 표리(表裏: 옷의 겉감과 안감) 일습(一襲)을 하사하였다.

1725년(영조 1) 3월 강릉부사에 제수되었을 때는 세금 때문에 유리걸식하며 고통 받는 백성들의 세금을 탕감해 주었으며, 1726년 대기근이 들자 비축된 곡식 300곡을 풀어 구휼하기도 하였다. 1727년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렸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발하자 풍기·영주·순흥의 사인들과 더불어 의병과 군량을 모아 난리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735년(영조 11) 제주목사겸호남방어사에 제수되었을 때는 사비를 털어 삼천서당을 지어 제주의 백성들에게 학문을 진작시켜 주었고, 어선을 축조하여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며, 제주도의 생산물과 육지의 쌀을 교환하여 대동미로 비축하여 어려운 시기에 대비하게 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737년(영조 13) 8월 제주목사의 소임을 다하고 육지로 나오기 위해 후풍관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이 심하게 불어 9월 3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고를 전해들은 영조는 삼남의 방백들로 하여금 특별히 상행(喪行)을 호송케 하여 12월 8일 고향에서 장사 지내게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노봉집(蘆峯集)』 4권 2책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순흥부(현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쪽 봉황산 뒤 평촌(坪村)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와산리에 있던 오천서원(梧川書院)과 제주시에 있는 상현사(象賢祠)에 제향되었다. 오천서원은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원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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