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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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宗阜 |
영어음역 | Bak Jongbu |
이칭/별칭 | 자후(子厚)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후(子厚). 증조할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박여헌(朴黎獻)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박충생(朴忠生)이다. 아버지는 도승지를 지낸 박창(朴敞)이며, 어머니는 신임(愼恁)의 딸이다.
[활동사항]
박종부(朴宗阜)[1600~1645]는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 급제한 뒤 증광문과에 갑과 방안(榜眼)[전시의 갑과에 둘째로 급제한 사람]으로 합격하여 종부시직장·세자시강원설서·사서를 지냈고, 1635년 사간원정언에 이어 지제교를 겸하였다.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 병조좌랑으로 강화도에 들어가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1638년(인조 16) 병자호란의 논공행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거론하는 등 직간(直諫)을 서슴지 않았다.
그 뒤 전라도도사가 되었고, 1640년 홍문관수찬·홍문관교리·사간원정언·사간원헌납·이조좌랑 등을 두루 거쳤다. 박종부는 조정의 논의와 뜻이 맞지 않아 외직을 자청하여 김제군수로 나아갔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박종부의 첩이었던 이소사(李召史)는 박종부가 세상을 떠나자 음식을 먹지 않고 슬퍼하다, 장례를 치른 후 스스로 목을 매어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