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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500692
한자 張善徵
영어음역 Jang Seonjing
이칭/별칭 정지(淨之),두곡(杜谷),서엄(西崦),풍양군(豊陽君),정장공(正莊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안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창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성별
생년 1614년연표보기
몰년 1678년연표보기
본관 덕수
대표관직 한성부판윤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정지(淨之), 호는 두곡(杜谷)·서엄(西崦). 증조부는 장일(張逸), 할아버지는 판서 장운익(張雲翼),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張維),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여동생이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활동사항]

장선징은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응곡리[현 시흥시 장곡동 안골]에서 태어났다. 인조 때 공신의 아들이라 하여 공음으로 영희전참봉(永禧殿參奉)에 보임되었으며, 세자익위사위수를 거쳐 1648년(인조 26) 김화현감을 지냈다. 효종 때 공조정랑, 배천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종 때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지냈다. 1662년(현종 3) 철원부사로 있을 때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직강,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사간원사간, 승정원우부승지, 병조참지 등을 지냈다. 병조참판에 올라 아버지의 작위를 승습하여 풍양군(豊陽君)에 봉해진 뒤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1674년 숙종이 즉위한 뒤 좌참찬을 거쳐 1677년(숙종 3) 한성부판윤으로 재임 중 외척 김우명(金佑明)의 무고로 송시열(宋時烈)이 거제도(巨濟島)에 안치되자 이에 대한 철회를 간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 뒤 사헌부집의 이상(李翔)이 소를 올려 송시열의 신원을 청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자 관직삭탈을 철회할 것을 주청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송시열의 신원을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용납되지 않자 고향인 안산에 내려가 두문불출하였으며 과천현 옹막리[현 시흥시 조남동]에 월파정(月波亭)을 지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구 안산군 초산면 제청리] 응단말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장(正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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