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D01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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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島의 自然環境, 豊島遙望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영의 |
행정구역상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소속된 풍도는 동경 126°, 북위 37°에 위치한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에서 직선거리로 24㎞ 정도 떨어져 있으며,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앞바다에서 12㎞ 정도 떨어져 있는 낙도(落島)이다. 풍도 동쪽 6㎞ 거리에는 말육도(末六島)·종육도(終六島)·육도(六島)·중육도(中六島)·미육도(尾六島) 등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당진군 대난지도(大蘭芝島)와 마주하고 있다. 풍도는 행정구역상 안산시에 속하지만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한 차례 운행하는 정기여객선을 타고 2시간 남짓 가야 하는 곳이다. 인천항에서 서남쪽으로 43㎞ 거리나 떨어져 있는 외딴 섬이지만, 면적 1.84㎢에 해안선 길이 5.5㎞의 비교적 작지 않은 섬이다.
풍도는 경기도 화성시 국화도(菊花島)와 함께 경기도의 대표적인 도서 지역에 해당한다. 풍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문헌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고인돌[지석묘] 2기가 있었다고 하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기원전 2,500~3,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 섬의 역사가 그러하듯 처음 섬에 들어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언제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섬을 지키면서 살아온 섬사람들의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
풍도는 서해 경기만 연안의 끝 섬으로, 예부터 군사, 해상교통 요충지였다. 특히 고려 전기에는 대중국 사신선(使臣船)이나 상선(商船)의 항로상에 위치한 까닭에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점차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예로 『고려사(高麗史)』에, 1352년(공민왕 원) 3월 왜선 20척이 풍도에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풍도 앞바다가 수도인 개경과 가까운 해상로였기에 왜선들이 이 지역을 통하여 강화도로 북상했을 것이다. 또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조곡과 세곡을 실은 배들도 예성강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 근처를 지나다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826년(순조 26) 5월 11일 풍도 수호별장감관(水護別將監官)이 서산 인근에서 표류한 15인을 보고한 일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08년 8월 14일에는 일제가 풍도·덕적도(德積島) 등 경기·황해도 일대에서 의병 토벌 및 수색작전을 실시했으며, 1918년에는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소속 풍도리에서 임야 조사 사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은 일제의 식민 탄압과 식민 수탈의 양상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1951년 11월 25일 풍도 근해서 객선(客船)이 침몰하여 50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
풍도는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난지도로부터는 북서쪽 4.5㎞ 거리에 있는데, 멀리 바라다보이는 풍도의 모습이 하늘빛, 물의 색[天光水色]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당진8경(唐津八景) 중 8번째로 ‘풍도요망(豊島遙望 : 풍도 멀리서 바라보기)’이 들어가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자연 풍광을 가진 풍도(豊島)는 섬 전체가 활엽수로 덮여 있고, 특히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영조~순조 때까지는 가을에 단풍이 절경이어서 ‘단풍섬[楓島]’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때문에 ‘풍도(楓島)’와 ‘풍도(豊島)’가 같이 쓰이다가, 1900년경 남양부 대부면 하부 행정리로 편제되면서 현재의 ‘풍도(豊島)’로 표기되었다.
풍도 사람들은 풍도의 농토가 부족하고 섬 근해 어장에 해산물이 풍족치 않아 살림이 넉넉지 못해 풍요를 기원하는 바람에서 ‘풍년 풍(豊)’자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풍도는 그 이름에 걸맞게 물산이 풍요롭다. 자연산 우럭과 꽃게, 낙지, 소라 등이 많이 나고 최근에는 전복과 가리비의 생산도 많다. 그런가 하면 작은 섬이지만 깊은 산골처럼 5~6월이면 참두릅과 더덕, 둥굴레 등을 채취할 수도 있다.
풍도는 해안 전체가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해의 다른 섬과는 달리 모래사장과 갯벌이 없다. 이 때문에 해안 바닷가의 물이 무척 맑다. 모래 가득한 해수욕장이나 화려한 리조트 시설은 없지만 특산물이 풍부하고 좋은 샘물과 기름진 땅, 맑은 공기가 있다.
이러한 빼어난 자연경관을 간직한 까닭에 지금은 많은 낚시인들과 전문 수석인(壽石人), 야생화 사진 촬영 동호인들이 자주 찾고 있다. 여기에 지천으로 자라는 야생화와 산두릅, 둥굴레, 산더덕, 흑염소 등은 봄철 주민의 주요 관광 수입원이 되고 있다.
풍도의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경기도는 지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서해안 10개년 종합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이곳을 가칭 ‘안산·화성연안해상도립공원’으로 지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