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43
한자 李起永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의평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 5월 20일연표보기 - 이기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3년 - 이기영, 대한독립의군부 참여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18년 1월 7일연표보기 - 이기영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 이기영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세곡리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대한독립의군부 참여 활동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기영(李起永)[1874~1918]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출신으로 구한말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이기영은 왕산(旺山) 허위(許蔿)[1854]~1908]의 사위로 1913년 임병찬(林炳瓚)[1851~1916]이 조직한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해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의군부는 1912년 9월 고종(高宗)[1852~1919] 황제가 내린 밀조(密詔)에 의해 임병찬을 중심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였다.

임병찬은 전국에 격문을 발송하고 동지를 초모하는 한편, 그 조직을 확대시켰다. 임병찬은 총사령관이 되어 일제의 내각총리대신과 총독 이하 모든 관헌에게 ‘국권반환요구서(國權返還要求書)’를 보내 일제에 의한 조선 병합의 부당성을 천명하였다. 또한 외국에 대해서도 일제의 통치에 한국민이 불복(不服)하고 있음을 표명하는 한편, 국민 대중에게 국권 회복의 의기를 일으켜 일제를 구축하려는 항일운동을 계획하였다.

이기영은 단도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1914년 4월 9일 윤상오의 집에서 40원 등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14년 4월 붙잡혀 징역 10년을 받고 옥중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경성지방법원 판결문」(1915. 5. 12.)
  •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국가보훈처, 200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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