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020 |
---|---|
한자 | 天主敎 |
영어공식명칭 | Catholic Church |
분야 | 종교/천주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학주 |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에 전파되어 교인과 교회를 확장한 천주교.
[개설]
한국의 천주교는 1594년(선조 27)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종군신부였던 포루투갈의 세스페데스에 의하여 조선에 들어와 전파되었다. 당시 서학(西學)이라는 신학문으로 연구되다가 점차 신앙으로 굳어졌다.
[초기 천주교 전래 및 전파]
『철원성당60년사』에 따르면, 철원 지역의 초기 천주교 상황을 알 수 있다. 『철원성당60년사』에서는 철원 지역 천주교 유래를 김기호[요한]가 쓴 『봉교자술』에 의거하여 적고 있다. 『봉교자술』에 의하면 1876년 10월부터 1877년 2월 초까지 블랑 신부를 모시고, 강원의 이천[현 북강원], 평강, 춘천, 낭천[현 화천], 철원의 공소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천에서 가까운 철원에 공소가 있었으며, 1884년 4월에 이천이 본당으로 설립되면서 철원은 이천본당의 관할 공소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철원군지』에 의하면 강원도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이다. 1801년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기호지방의 교인들이 박해를 피하여 강원도로 들어와 토기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0년에 작성된 『강원도지』에는 철원과 김화 지역의 신도 수는 나타나 있지 않고, 현재 북한 지역인 평강 지역에만 452명의 신도가 있다고 하였다.
철원 천주교회 부흥을 일으킨 신동균[스테파노, 1904~1967]은 24세에 현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지역에 있던 평강 본당의 철원 공소 회장이 되었으며, 1950년 6·25전쟁 이후 38선 이북에 살다가 1954년 철원 지역이 수복되자 본래 살던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로 왔으나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철원군 동송면 이평3리에 승리하숙을 짓고 공소예절(公所禮節)[공소에서 미사 대신으로 행하는 전례]을 시작하였다. 이후 1954년 당시 춘천지목구장이었던 구인란 토마스(Thomas F. Quinlan)[?~1970] 주교를 찾아 신부를 청하여 철원에 죽림동성당의 공소가 되었다. 1957년 6월 4일 초대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여 설립 미사를 봉헌하고 삼왕내조 성당으로 명명하였다.
[현대 천주교 및 활동]
철원의 천주교는 1800년대 후기에 들어와서 정착을 한 후 교세를 꾸준히 이어갔다. 철원성당은 제1대 주임신부 노베드로를 시작으로 제19대 주임신부 정귀철 베네딕토가 2017년 6월에 부임하였다. 철원본당 설립 이전의 철원 공소는 1876년 10월에 시작하였고, 1957년 춘천 죽림동본당의 철원공소가 승격되어 철원성당이 설립되었다. 철원성당 대마공소는 1969년에 시작하였다.
『철원성당60년사』에 의하면 천주교는 6·25전쟁 당시 선교도 하면서 구호사업도 펼쳤다. 전쟁이 끝나고 주민들은 의식이 모두 부족하였던 터였다. 이에 천주교 춘천교구 철원성당에서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로 배당된 가톨릭복지회의 구호물품을 쉴 새 없이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 사업은 철원에서 천주교가 더욱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황]
2019년 현재 철원에 있는 성당은 갈말성당[1954], 철원성당[1957], 김화성당[1959], 백골성당[1987] 등이 있고, 공소는 갈말성당 문혜공소[1954], 김화성당 마현공소[1960], 철원성당 대마공소[1978] 등이 있다. 철원의 성당은 각 지역마다 공소를 설치하고 안정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철원의 천주교는 철원 지역민의 자유로운 신앙생활에 일조한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