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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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軍治安隊 |
이칭/별칭 | 치안대,보국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규 |
[정의]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 지역에 있었던 치안 유지 단체.
[개설]
국군치안대원들은 우익 청년들로 조직되었으며, 미군과 국군의 지시를 받아 마을의 질서 유지와 치안을 담당하였고, 무기를 갖추기도 했던 준군사조직이었다.
[설립 목적]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가면서 점령하는 접촉 지구였던 철원은 미군과 국군이 북진하여 인민군이 물러가면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을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미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인민군과 공산당 열성분자들이 북으로 쫓겨가자 산속에 숨어 지내던 철원 주민들은 마을로 내려왔다. 그중 우익 청년들이 국군치안대원이 되어 미군과 국군의 지시를 받아 마을의 질서 확보에 나섰다. 미군과 국군이 38선을 돌파하고 철원을 지나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어도 철원과 김화, 평강 지역에는 인민군 패잔병이 늘 1개 사단 정도는 머물고 있었다. 더구나 철원과 김화, 평강 지역은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가면서 점령하는 접촉 지구였기 때문에 공산 치하였다가 바로 국군이 들어오면 치안은 극도로 불안하였고 마을 사람들의 운명도 오락가락하였다. 국군치안대원들은 마을 치안유지와 함께 국군을 도와 인민군 패잔병 및 공산주의자 색출에 나섰고 16세~18세의 아직 어린 치안대원들은 마을과 마을 간의 소식 전달이나 심부름을 주로 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군이 후퇴해 인민군이 다시 마을에 들어오면 치안대원이나 그 가족들은 숙청 대상 1호였다. 국군치안대 활동을 한 사람들 중 인민군에 잡혀 죽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많았다. 수복지구인 철원은 이념 갈등이 낳은 비극의 현장이었으며,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