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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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炳淸白愛民善政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Monument for Bakbyeong|Bakbyeong Chungbaekeminbulmangb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원미경 |
건립 시기/일시 | 1651년 - 박병 청백애민선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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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87년 - 박병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63년 - 박병 사망 |
현 소재지 | 박병 청백애민선정비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
성격 | 비 |
양식 | 비좌원수(碑座圓首)형 |
관련 인물 | 박병 |
재질 | 현무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20㎝[높이]|60㎝[폭] |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철원도호부사를 지낸 박병의 선정비.
[개설]
박병(朴炳)[1587~1663]은 본관이 반남(潘南)이고 자(字)는 소문(少文)이다. 할아버지는 감정(監正) 박응천(朴應川)이고, 아버지는 참봉 박동민(朴東民)이며, 큰아버지인 사간 박동현(朴東賢)에게 입양되었다. 어릴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배웠고, 이후 김현성(金玄成)에게 사사하였다. 성품이 대쪽 같아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였으며,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되면 비록 왕명이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1650년(효종 2)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을 거쳐, 임천군수(林川郡守),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역임하였다. 1646년(인조 24) 10월 29일 철원도호부사로 부임하여 1650년(효종 2) 5월까지 충실히 임기를 채우고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러 도읍의 수령 생활을 30년간 역임하는 동안 본성이 간결(簡潔)하고 청신(淸愼)하고 강명(剛明)해서 박병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주민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우고, 안찰사(按察使)나 관찰사(觀察使)는 다투어 표창하였다. 왕으로부터는 세 번이나 은전(恩典)을 받은 사표(師表)가 되는 목민관(牧民官)이었다. 죽은 뒤에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등록되었다. 박병 청백애민선정비(朴炳淸白愛民善政碑)는 1651년(효종 3) 건립되었다.
[위치]
박병 청백애민선정비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노동당사에서 대마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있다.
[형태]
박병 청백애민선정비는 비의 머리 부분이 둥근 비좌원수(碑座圓首) 형태이다. 현무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120㎝이고 폭은 60㎝이다.
[금석문]
박병 청백애민선정비의 앞면에는 ‘부사박병 청백애민선정비(府使朴炳淸白愛民善政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박병 청백애민선정비는 여러 곳에 총탄 흔적이 있고 특히 오른쪽 부분이 많이 파손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박병은 철원도호부사를 비롯해 여러 관직을 거치며 선정을 베푼 목민관이자 청백리로 등록된 인물이다. 박병 청백애민선정비는 박병의 애민 정신과 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