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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해미골에 관해 전해 오는 이야기. 「나팔수와 호랑이 전설」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해미골과 관련된 설화로 술을 좋아하던 나팔수가 호랑이 똥에 화상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나팔수와 호랑이 전설」은 1979년 8월 25일 김찬기로부터 채록한 내용이 『당진군지』(당진군, 1997)에 수록되었고, 1980년 6월 18일 김형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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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편찬 위원회가 발행한 대호지면 지지. 『대호지면지』는 대호지면사무소와 대호지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02년에 대호지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편, 역사편, 행정편, 산업 경제편, 문화편, 성씨 인물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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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오산 차천로의 문집.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선조 대부터 광해군 대까지 활동했던 문신이자 시인이다. 뛰어난 시재(試才)를 지녀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문명을 날렸으나 재능과 포부를 다 펴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다. 오산 차천로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크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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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가 시조이고 김부광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김씨(慶州 金氏)의 기원은 김알지(金閼智)이고,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 입향한 인물은 김부광(金孚光)[1589~1638]이다. 김부광은 17세기 초기 인물로 이곳에 400년 넘게 집성촌을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많이 거주하지는 않지만, 한때 20여 호가 거주할 정도로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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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지면 적서리에 있는 차숙보의 며느리 경주김씨의 효열비. 경주김씨(慶州金氏)는 대호지면 적서리의 부호였던 차숙보(車淑輔)[1859~1945]의 며느리였다. 경주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고, 집안일은 물론 남편을 대신하여 인천을 자주 왕래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해난 사고로 사망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효열비를 세웠다.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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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출포리에 있는 경주이씨의 효부문. 경주이씨는 당진시 대호지면 출포리에 살던 김국진의 아내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잘 섬겨 벼슬길에 내보냈고, 가산을 크게 일으켰다. 하지만 남편은 소실을 얻어 가산을 탕진하였고, 병든 시부모는 끊임없이 경주이씨를 괴롭혔다. 그래도 경주이씨는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모셨고, 효부문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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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남도 당진 지역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성종은 전국을 12목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는데, 이 때 당진 지역은 홍주목 관할이었다. 통일신라 때부터 사용했던 혜성군[현 면천면]과 당진현, 신평현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고려는 1018년(현종 9)에 행정 구역을 5도 양계로 개편했고, 당진 지역은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정세의 변동과 인물의 등장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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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일(金道一)[1886~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김도일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규모,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김도일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번지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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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열녀. 김여란(金如蘭)[?~1627]은 정묘호란 때 안주성에서 남편 남이흥(南以興)[1576~1627]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임신 중이었음에도 자결한 열녀이다. 김여란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평안도 별마절도사를 지낸 충장공(忠壯公) 남이흥의 부실(副室)[첩]이다. 김여란은 평안도 귀성(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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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전개된 화서학파의 민족 운동. 화서학파(華西學派)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을 지칭한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당진 지역 민족 운동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배경으로 화서학파와 연결된 성리학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대표되는 한말의 성리학은 외세 침략에 적극적으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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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와 고대면 당진포리를 연결하여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대호지(大湖芝)’라는 지명은 사성리 대호 마을에서 유래했다. 대호지 마을 이름은 지형이 바닷가로 길게 뻗어서 옆의 가로림만이 호수처럼 생기고 곶[串]을 이루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현재는 지명 그대로 대호 방조제가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와 서산시 삼길포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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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에 있는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대한 불교 태고종(大韓佛敎 太古宗)은 태고(太古) 보우 국사(普愚國師)를 종조로 하고 석가모니불을 교조로하는 불교의 종파이다. 대호사는 정미면에서 대호지면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나오는 대호지면사무소에 조금 못 미쳐 있다. 사찰이 마을 바로 근처에 위치한 이유는 태고종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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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주민들이 1919년 4월 4일 천의장터에서 일으킨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례한 대호지면 유생 남주원·남상돈·남상락·남계창 등이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입수하여 귀향한 후, 대호지면 이인정 면장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도로와 가로수 정비’라는 명목으로 대호지면 9개 동리 주민을 동원하여, 4월 4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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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에 있는 감리교회. 대호지감리교회는 1954년 3월 5일에 기독교 대한 감리회 호서 지방 천의 구역 대호지 기도처로 인정되면서 대호지감리교회가 공식 출범하고, 제1대 담임자로 장명활 전도사가 파송되었다. 대호지감리교회는 대호지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면내 지역 주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대호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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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한 법정면. ‘대호지’란 촌명은 지형이 바닷가로 길게 뻗어서 옆의 만이 호수처럼 생기고 곶을 이루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원래 해미현 읍내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면(西面)이라 불리어 왔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호지면이라 하여 서산군(瑞山郡)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서산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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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리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신동 간척지를 축조하기 이전에 바다 가운에 우뚝 솟은 섬에서 복숭아 오얏나무가 다수 자생하여 봄철에 꽃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루었다. 이에 복숭아 도(桃) 자 오얏 이(李) 자를 따서 ‘도리섬’이라고 칭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상도, 하도, 전동, 애동을 통합하여 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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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있었던 근대 학교. 도호의숙의 교육 목표는 애국·충절을 바탕으로 한 민족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 강당(講堂)골에 있던 도호의숙(桃湖義塾)은 남이흥(南以興)[1576~1627] 장군의 후손인 의령 남씨(宜寧男氏) 종중에서 그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종숙(宗塾)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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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당진의 독립운동은 대한 제국의 국권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상실되어 가던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내내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당진 사람들의 항일 투쟁을 지칭한다. 당진 사람들은 을사늑약을 계기로 우리의 외교권이 피탈됨을 국권 상실로 인식하고 본격적인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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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 마리의 큰 용이 두산리에 있는 두룡굴에 살다가 나갔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지금은 두 용 사이에 작은 산이 가로 막혀 있어 ‘두산리’라 불리고 있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으로 두릉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능동, 고치리와 병합하여 두산리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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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모산 기슭 정상에서 보면 말등의 가운데 부분 같다 하여, 혹은 자모산 기슭에서 군마를 양성한 데서 명칭이 유래했다. 마사(馬沙)와 중리(中里)에서 한 자씩 따서 마중리라 하였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면 마사리, 승선동, 중리, 정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마중리로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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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방구바위 아래에 있는 나루. 방구바위 나루터는 정미면에서 발원하여 북류하여 가로림만으로 흘러들던 염솔천의 최하류에 있던 나루이며,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가로림만을 가로 질러서 서산시 대산읍과 지곡면으로 건너다녔다. 대호지면은 당진시의 서부 가로림만에 있는 면이다. 원래 남쪽을 제외한 삼면은 바다와 접한 지역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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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장정리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장정리에 봉선암[구 화엄사]이 있다. 1963년경 비구니 정연순이 봉선암을 창건하여 운영하였다. 봉선암은 산세가 봉황이 앉은 형세라고 하는 어성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봉황이 내려와 목을 축이며 도량을 향해 절을 하였다고 하여 ‘봉선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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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이 시조이고 김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부안김씨(扶安金氏)의 시조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 태자 김일(金鎰)[?~?]이다. 본격적인 가문의 발전은 4세손 김경수(金景修), 9세손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1211~1278]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대호지면 두산리에 세거지를 형성한 인물은 20세손 김선(金瑄)[?~?]이다. 김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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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해안에 위치하여 모래사장이 성처럼 둘러 싸여 있으므로 사성리(沙城里)라고 불렀다. 본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면, 사기소리, 성포리, 조금진리, 하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기소’와 ‘성포’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사성리라 하여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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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봉운(宋逢云)[1891~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송봉운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아버지는 송일기,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송봉운은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사성리 20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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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천(松川), 전촌(田村)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송전리(松田里)라고 하였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전촌리, 창리, 송천리, 정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전리라 하였으며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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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는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다. 삽교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예당 평야를 바탕으로 질 좋은 쌀이 생산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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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효전이 시조이고 차건의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연안차씨(延安車氏)는 황해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다. 시조 차효전(車孝全)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연안차씨는 당진시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집성촌이 대호지면 적서리의 오산공파 후손들이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건립하여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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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달준(李達俊)[1881~1919]은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이달준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명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달준은 지금의 충청남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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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충신 정려가 있는 조선 시대 무신. 이시경(李蓍慶)[?~1597]은 정유재란 때 군공을 세웠으나 전사하였다. 1792년 정조 때 충신 정려를 내렸는데, 현재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에 있다. 이시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약산(藥山)이다.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李陽元)의 셋째 아들이다. 이시경은 진사과에 급제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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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시경의 정려. 이시경(李蓍慶)[?~1597]의 충신 정려는 약산사(藥山詞) 또는 세마 별묘(洗馬別廟)라 부른다. 이시경은 조선 후기 영의정 이양원의 아들로 정유재란 때 군공을 세웠으나 불행히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1792년에 충신 정려를 내렸다. 이시경 충신 정려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문헌로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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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양원(李陽元)[1526~1592]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유도대장(留都大將)[임금이 서울을 떠나 거둥할 때, 도성 안을 지키던 대장]으로 한강을 수호하고 왜적을 무찔렀으나, 선조가 의주를 넘었다는 와전된 소식을 접하고 단식 끝에 순절하였다. 이양원의 본관은 전주(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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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와 정미면 산성리 경계에 있는 산. 자모산(字母山)은 성산성, 성산, 산성, 감투봉, 재미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당진시의 서쪽 대호지면 마중리와 정미면 산성리 경계에 있는 해발 256m의 산이다. 『조선 지형도』 당진 편에는 당진읍치 남서쪽에 자모산이 나타나 있다. 자모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 둘이 나란히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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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에 있는 산성. 자모산성(慈母山城)[또는 子母山城]은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둘레를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자모산은 대호지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산성은 대호지면 주변의 해안을 감시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모산성은 산정식(山頂式) 토성으로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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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 『만기요람(萬機要覽)』 각전 조(各廛條)에 “행상이 모여서 교역하고는 물러가는 것을 장(場)이라고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이 장(場)이 바로 장시(場市)다. 장시는 15세기 말 전라도 지역에서 나타난 이래, 조선 후기에 들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즉, 1830년대 시장을 정리하고 있는 『임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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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윗말 동네에 옛날부터 현재까지 항상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어 장정리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면 정곡리, 상장지리, 하장지리, 경치리 일부를 통폐합하여 장지와 정곡에서 한 자씩 따서 장정리라 하여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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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적서리 일대의 토색(土色)이 유난히 붉기 때문에 붉은 땅, 즉 '붉은 쥐'라 해서 ‘적서리(赤鼠里)’라 했다.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 하전형(老鼠下田形) 지형이므로 ‘적서리’라고 하였으며, 이 밖에 도산이란 도사가 산세를 보고 ‘적서리’라고 정했다는 설도 있다. 서북쪽에 고양이 바위라 하는 바위가 있는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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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을 당진시에 통합시킨 행정 구획 변경.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은 원래 서산시에 속했다. 하지만 두 면은 서산시보다 당진시에 가깝다는 이유로 당진군 편입운동이 1930년대부터 전개되었다. 줄기차게 진행된 이 움직임은 1957년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 그 결과 당진군의 군세(郡勢)가 확장되었고, 1958년 치른 제4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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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해미군 서면 조금진리 지역으로 조금 초등학교 뒤에 있는 청룡산이 옥녀 탄금형(玉女彈琴形)이고 앞산이 거문고를 고르는 형이며, 서편에는 바다가 있어 서산시 지곡면과 대산읍 및 인천과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었기에 조금진리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출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조금리(調琴里)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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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장에 뛰어나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 문서를 담당하며 명성을 떨쳤다. 차천로는 시와 가사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한시에 능했다고 전한다. 후손들은 오산공파(五山公派)라 하여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세거지를 이루고 영정을 봉안한 문원사(文苑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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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있는 차천로를 배향하는 사당.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당진지 대호지면 적서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세우고, 조선 선조 때의 대문장가였던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하여 학문과 사상을 기리고 있다. 문원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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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줄기가 바닷가로 날개처럼 길게 뻗었으므로 날개 또는 출포리(出浦里)라 하였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출포리 일부를 조금리에 편입시키고 나머지 부분을 그대로 출포리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서산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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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 당진 지역의 역사. 을사늑약을 계기로 의병 항쟁이 발발하였던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내내 우리 민족은 치열한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 세계 식민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포악했던 일제 강점기도 결국 우리 민족의 독립 열기 앞에 무너져 내렸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해방 후의 진로는 열강에 의해 결정되었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