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0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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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調琴津- |
영어공식명칭 | Jogeumjin Ferr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추윤 |
최초 설립지 | 조금진 나루터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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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조금진 나루터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 |
성격 | 나루터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에 있었던 나루터.
[개설]
옛 해미군 서면 조금진리(調琴持里)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조금 초등학교 뒤에 있는 청룡산(靑龍山)이 옥녀 탄금형(玉女彈琴形)이고 앞산이 거문고를 고르는 형이며 서쪽에는 바다가 있어 서산시 지곡면과 대산읍 및 인천과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었기에 ‘조금진(調琴津)’이라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갯벌을 갈아서 염정(鹽井)[바닷물을 모아 둔 웅덩이]을 만들고 여기에서 나오는 간수를 가마솥에 넣고 증발시켜서 소금을 만드는 것을 벌막이라 하는데, 조금(潮-) 때 이곳에서 많이 했다 하여 조금진 나루라고 했다고 전한다.
조금리 갯벌의 간척이 있기 전에는 조금리의 지형이 만처럼 안으로 들어와 바닷물이 조금 초등학교 가까운 곳까지 안쪽으로 쑥 들어차는 형태였다. 조금진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서산 지곡면 쪽으로 다녔다.
[변천]
원래 해미현(海美縣) 읍내의 서쪽에 서면(西面)이 있었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 때에도 그대로 서면이 존속하여 조금진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산군 대호지면이 조금리(調琴里) 등을 관할하다가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조금진은 남연군 묘(南延君墓) 도굴 사건으로 유명한 오페르트(Oppert) 사건 시에 영국 상선 로나호가 1866년 3월 31일과 1866년 8월 6일 두 차례나 정박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