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707
한자 全鳳岐
영어공식명칭 Jeon Bonggi
이칭/별칭 덕문(德文)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3년연표보기 - 전봉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10년 - 전봉기 가선대부 승품
몰년 시기/일시 1812년연표보기 - 전봉기 사망
거주|이주지 전봉기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묘소|단소 전봉기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지도보기
성격 의인
성별
본관 옥산
대표 관직|경력 가선대부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인.

[개설]

전봉기(全鳳岐)[1753~1812]는 1810년(순조 10) 사재(私財)를 털어 백성들을 구휼하고, 역리(驛吏)에서 면역(免役)되었다.

[가계]

전봉기의 본관은 옥산(玉山)[경산(慶山)], 자는 덕문(德文)이다. 아버지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전태항(全泰恒), 어머니는 정경운(鄭慶雲)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 할아버지는 전특중(全特重), 증조할아버지는 전의일(全義一)이며, 부인은 김재명(金再鳴)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활동 사항]

경산현의 역리(驛吏)였던 전봉기는 1810년(순조 10) 나라에 큰 흉년이 일어나자 조(租) 1,000석을 원납(願納)하여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당시 전봉기의 사촌 동생 전동수(全東秀)·전동엽(全東曄) 형제도 1,000석을 원납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정부는 전봉기의 역(役)을 면제해 주었다. 또한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를 내려주었으며, 그 자손이 향임(鄕任)에 임명될 수 있게 조치하였다. 이어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장계(狀啓)를 올려 전봉기의 선행을 재차 보고하자, 순조는 전봉기의 품계에 맞추어 실직(實職)을 제수하라고 분부하였다. 이 때문에 전봉기는 오위장(五衛將)에 의망(擬望)되었고, 전동수·전동엽과 함께 궁궐로 가서 숙배(肅拜)하였다.

[묘소]

전봉기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황대곡(黃帶谷)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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