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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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입향 시기/일시 | 1402년 - 경주김씨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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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주김씨 입향지 - 제주도 정의현 오조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입향지 -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집성지 -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서호동·하원동 |
성씨 시조 | 김알지(金閼智) |
입향 시조 | 김검룡(金儉龍) |
[정의]
대보공(大輔公) 알지(閼智)를 시조로, 그리고 경순왕 김부(金傅)를 관(貫) 시조로 하며, 김검룡(金儉龍)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제주도 각지에 분포하여 벌족을 형성하고 있는 경주 김씨의 주류는 은열공파의 분파인 익화군파가 차지하고 있다. 익화군은 조선 개국 1등공신으로 의정부 좌찬성 벼슬에 올랐던 김인찬[시호 문민공]으로 익화군의 3남 김검룡이 조선 초 정의현 오조리에 거주함에 따라 이를 첫 입도 낙향조(落鄕祖)로 삼는다. 그리고 경주김씨 영분공[명종:경순왕의 제3자]파 입도조 태임이 1699년(숙종 25) 제주 한경면 낙천리에 정착하면서부터 제주도 내 여러 후손들이 생활하고 있다. 영분공파 태임 4세손 이후 후손들이 번창하여 명복[장파]과 명집[중파], 명관[말파]으로 나뉘어 분파를 형성하고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54만 2018가구에 173만 67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원]
경주김씨계의 원조(元祖)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탄생 설화가 등장하는 대보공 알지이다. 그 후 김알지의 후손은 번창을 거듭하면서 수백에 달하는 관향[본관]으로 나뉘어진다. 김알지계의 주요 분종과 그 시조의 연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분파조는 신라의 마지막왕 56대 경순왕의 후손들이며, 대보공 김알지계 가운데서도 대종을 이루는 것이 경주김씨라는 점이다. 경주김씨는 분파와 지파가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매우 복잡하다. 경주김씨의 대표적인 파를 보면 은열공[경순왕의 제4자]파, 태사공[인관:경순왕의 후손 혹은 헌강왕의 8세손설]파, 판도판서공파[장유:경순왕의 후손], 영분공[명종:경순왕의 제3자]파, 호장공[위영]파를 손꼽는다.
[입향 경위]
명가의 후예로 영달이 보장된 김검룡이 어떤 연유로 낙향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조선 초기인 정종 말기, 아니면 태종 초에 감목사로 입도했다는 기록이 있고, 1402년(태종 3), 양마 여섯 필을 생향인 경기도 양근현[오늘날 양평군] 마유봉에 보내 헌마한 후 같은 해에 제주도 지관이 되었다는 기록이 가문에 전승되는 점으로 미루어 경주김씨 입도조 김검룡은 처음부터 감목사라는 벼슬로 제주도와 인연을 맺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 후 난세를 개탄해 정치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그만둔 다음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정의현 오조리에 정착해 새 생활의 터전을 잡았다. 이때는 이방원[태종]이 왕자의 난으로 골육 상잔의 비극이 벌어져 세상이 어수선할 때였다.
[현황]
서귀포 정의현 오조리에 정착한 김검룡은 서당을 열어 후진 교육에 힘쓰고 예의범절을 가르치며 흥학에 전념했다. 김검룡의 학문과 명성은 여러 지역에 미치게 되었다. 입도조 검룡공의 묘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3516[가마곳]에 위치하며, 양력 4월 마지막 일요일에 묘제를 봉행하고 있다. 익화군파 입도조 김검룡의 장파는 서귀포시 지역에 주로 살며 파조가 남원읍 한남리의 ‘반드기왓’에 묻혀져 있어 ‘반드기-파’라고도 한다. 중파는 제주시 지역과 대정 일대에 분포되고 있으나 파조가 송당리 ‘돌오름’에 묻혀 있어 ‘돌오름파’라고도 한다. 말파는 한경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산남 지역에 거주하는 경주김씨는 남원읍 의귀리, 서귀포시 호근동·서호동·하원동, 대정읍 신도리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김검룡의 7세손 김만일이 양마를 헌마한 공으로 오위도총관의 벼슬에 올랐으며 숭정대부의 작을 받은 것이 경주김씨 가문을 중흥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특히 김만일의 후손들이 전국에서는 오직 제주도에만 존재했던 산마장을 감독하기 위한 관직인 산마 감목관직을 맡아 경주김씨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조선 후기 김만일 후손들로 대표되는 경주김씨 가문은 목장 운영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제주도 지배 세력의 한 축을 이루었다.
2000년 11월 현재 경주김씨는 제주도에 7,434가구에 23,836명이 거주하여 전체 5위이며, 서귀포시 지역에서는 2,866가구에 8,876명이 거주하여 전체 3위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