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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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정의]
신라 경순왕의 손자 나주군 김운발(金雲發)을 시조로 하고 김인충(金仁忠)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나주김씨는 신라 경순왕계에 속하며 경순왕은 대보공 김알지의 28세손이다. 경순왕의 손자 김운발은 김알지의 30세손이 된다. 신라 천년사직이 고려에 이양된 후 고려 조정에서는 김운발을 나주군에, 차자 김우발(金雨發)을 경주군에 봉함에 따라 김운발이 곧 나주김씨의 시조가 된다.
[연원]
제주 입도조 김인충은 시조 김운발의 14세손으로 고려 말에 무신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강화진 좌령랑장(左領郎將)을 역임하였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1403년(태종 3)에 제주에 입도하여 제주목 애월읍 고내봉 부근인 구엄리에 정착하였다. 제주 입도조 김인충의 아들 계전(季全)은 천호(千戶)를 지냈고, 그 손자 여수(麗水)는 조부의 뒤를 이어 무과에 올라 그 벼슬이 어모장군 충무위부사직(禦侮將軍忠武衛副司直)에 이르렀다. 병조 참판을 지낸 김지손(金智孫)은 김인충의 증손이다.
[입향 경위]
제주 입도조 김인충(金仁忠)의 후손 중 제주에 들어와 가장 빛을 남긴 인물은 5세손 김성조(金成祖)이다. 1555년(명종 10) 7월 제주성에 왜구 1,000여 명이 침공해 오자 제주 목사 김수문이 감히 출전할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십대의 열혈 청년 김성조가 특공대를 지휘하여 왜구에게 결정타를 입히고 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입도조 7세손 김위남으로부터 서서히 벌족이 형성되었다.
[현황]
벌족으로 발전한 김위남 일가는 종파(宗派)하여, 김수남 일가는 동파(東派)를 이루고, 김두남 일가는 서파(西派)를 이루었으며, 김진남 일가는 진남파(珍南派)를 이루었다. 종파는 제주시 영평동을 중심으로 벌문을 이루어 갔고, 동파는 제주시 화북동을 중심으로, 서파는 제주시 오라동, 애월 납읍리과 광령리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과 제주도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주김씨는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 전 지역에 1,080가구 3,643명이 거주하고 있다. 서귀포시 지역에는 106가구에 370명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