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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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基亨 |
이칭/별칭 | 기요하라(靑原邦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규복 |
출생 시기/일시 | 1916년 2월 1일 - 양기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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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4년 2월 - 양기형 반제프락치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4월 - 양기형 일본공산당 입당, 오사카시 위원회 남지구 준비회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1월 21일 - 양기형 공산당 활동으로 기소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6월 27일 - 양기형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형 선고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 양기형 사망 |
출생지 | 양기형 출생지 -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1934번지 |
거주|이주지 | 양기형 일본 거주지 - 오사카시 서성구 북개정 3정목 11번지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일본공산당 활동으로 투옥 |
[정의]
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안덕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1916년 2월 1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1934번지에서 양군석(梁君錫)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양기형(梁基亨)의 일본명은 기요하라[靑原邦夫]이다.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사립 고노하나(此花)상업고등학교 3년을 신문배달을 하여 수료하였다. 양기형은 성장하면서 민족 문제에 대한 강한 의식을 품게 되고 1934년 2월 일본 공청(共靑) 간사이(關西)지방위원회 준비회의 반제(反帝)프락치로 활동하게 된다. 이 조직은 당시 같은 좌익계열의 조직인 일본공산당, 일본공산청년동맹 등과 달리 유독 일본인 회원이 없었고 재일 한국인·만주인·대만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여타 다른 단체와는 달리 대부분 인텔리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이는 한국·만주·대만 등지 출신의 일제 식민지 영유를 반대하는, 독립을 위한 반일제 투쟁의식이 철저한 사상가가 아니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양기형은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오사카시위원회 남지구준비회를 결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반제동맹이었던 그가 공산당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1931년 4월 일본공산당이 내세운 정치 강령 초안의 기본 슬로건중 하나인 ‘조선·대만 등의 완전 독립’과 한국·대만 공산주의 운동의 제휴 및 일본 내의 한인 및 대만인의 조직화를 주안점으로 하는 민족정책의 확립과 민족부의 설치를 결정한 것에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항일활동은 지속되지 못한 채 검거되고 1935년 1월 21일 공산당 활동을 이유로 기소되었다.
1936년 6월 29일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