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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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達三 |
이칭/별칭 | 이승진(李承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용철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5월 1일 - 김달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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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5년 9월 30일 - 김달삼 일본 도쿄중앙대학 전문부 법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10월 20일 - 김달삼 서귀포시 대정공립초급중학교 촉탁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4월 3일 - 김달삼 4·3 사건 시 인민해방군 무장대사령관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8월 - 김달삼 해주 인민대표자대회 참가 |
몰년 시기/일시 | 1950년 3월 22일 - 김달삼 사망 |
출생지 | 김달삼 출생지 - 서귀포시 대정면 영락리 978번지 |
묘소 | 김달삼 묘소 - 북한 평양 인근 형제산 |
성격 | 사회주의 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주4·3항쟁 인민해방군 무장대사령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위원 |
[정의]
서귀포시 대정면 출신의 해방 정국의 사회주의 활동가.
[개설]
김달삼(金達三)은 1943년 4월 교토[京都] 성봉중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도쿄[東京]중앙대학 전문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제주 4·3 사건 당시 인민해방군 사령관이었으며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조직부장이었다. 그리고 1948년 8월 해주에서 개최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제주 대표로 참가하였다.
[가계]
김달삼은 본명이 이승진으로 본관은 고부이다. 1925년 5월 1일 제주도 대정면 영락리 978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이평근(李平根), 어머니는 풍기 진씨이다. 부인은 남로당 중앙위원인 강문석(姜文錫)의 딸 강영애이다. 김달삼은 가명으로 장인인 강문석(姜文錫)이 쓰던 이름을 이어받아 사용하였다.
[활동사항]
김달삼은 1946년 10·1 대구항쟁에 참가하였고, 1946년 10월 20일부터는 제주도 대정공립초급중학교 교사로 사회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8월에는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조직부장이 되었으며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인민해방군 사령관으로 봉기를 주도하였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개최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떠났으며, 그 대회에서 입후보자에 대한 토론을 통해 4·3 봉기에 대한 연설을 하고 35명의 주석단 일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9월 2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된 조선최고인민회의에서 49명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해주대회 이후, 평안남도 강동군에 설치된 강동정치학원을 수료하고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원에서 인민유격대 제3병단을 지휘하였다.
1950년 3월 22일 국군 8사단과의 교전 중에 사망하였다는 설이 있다.
[묘소]
김달삼의 묘소는 북한 평양 인근 형제산 구역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가묘로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