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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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榮述 |
이칭/별칭 | 자행(子行),남호(南湖)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890년 - 강영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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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2년 - 강영술 초대 제주도의원 선거에 당선, 임시 의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6년 - 강영술 제2대 도의원 재선됨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 강영술 제주도의회의장으로 선출됨 |
출생지 | 강영술 출생지 -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2863번지 |
성격 | 유림(儒林)|근대 정치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정향교 재단이사장, 대정면장, 제주도의회 의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대정읍 동일리 출신의 유림·정치가.
[가계]
강영술(姜榮述)의 자는 자행(子行), 호는 남호(南湖)이다. 1890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2863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晋州)이고, 아버지는 강여진(姜呂眞), 어머니는 문씨이다. 그의 집안은 구한말 이래 유림 집안이다.
[활동 사항]
강영술은 광복 후 대정 면장을 역임하면서 4·3 사건 당시 국민회 대정지부장으로 사태 수습에 노력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대정에 육군제1훈련소가 들어서면서 숙영지문제로 대정향교 건물들이 훼손되기에 이르자 향교 보호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전란 중이던 1952년 5월에는 초대 제주도의원 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당선, 도의원 20명 중 최고의 연장자로 임시 의장이 되기도 하였다. 1953년 휴전 무렵에는 대정·안덕·한경 일부지역의 농경지가 훈련소에 의해 징발되자 이를 되돌리는데 노력하였다.
제주향교 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후 1956년 9월 제2대 도의원 선거에서 재선되었고, 1960년 4·19 혁명에 의해 김도준(金道準) 의장이 사퇴하자 5월에 새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68년에는 「원대정군지(元大靜郡誌)」 출판준비위원회의 고문으로서 이를 추진 완성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