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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452
한자 烽燧
영어의미역 Beacon Fire St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집필자 이희돈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시설.

[개설]

봉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조선 전기에는 더욱 정비되어 서울의 남산인 목멱산(木覓山)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국경과 해안에서 올라오는 봉수 노선은 크게 직선 봉수[直烽]과 간선 봉수[間烽]로 구분된다. 직선 봉수는 기간 선로이며, 간선 봉수는 직봉과 직봉 사이의 중간 지역을 연결하는 보조선이다.

조선시대 전국의 봉수망은 제1로에서 제5로까지 5개의 직봉 선로가 있었다. 이 가운데 강원도의 봉수 노선은 제1로와 제2로에 연결되어 있었다. 제1로는 목멱산 봉수에서 볼 때,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기점은 함경도 영안동이며, 강원도와 경기도를 거쳐 양주 아차산을 통하는 봉수다. 제2로는 목멱산의 남동향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기점은 경상도 동래·경상북도·충청북도·경기도 광주 천천령으로 오는 봉수이다.

그러나 동해안의 강원도 봉수는 제2로에서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경상북도 영덕 대소산 봉수에서 내륙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조선 후기에 강원도 지역 대부분의 봉수가 그 기능을 잃어 폐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입지와 위치]

봉수대는 본래 전망이 좋은 높은 산꼭대기에 위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울진 지역 봉수대의 입지는 정상보다는 산허리에 설치하여 산을 오르내리기 쉽고, 교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지역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입지상의 특징은 봉군의 근무 조건 향상을 위한 것으로 우천시 봉군이 도보로 직접 전달하기 쉽도록 한 것이다.

울진 지역의 봉수대는 연변 봉수대라는 특징이 있어 다른 지역의 연변 봉수대와 마찬가지로 조망이 가장 쉽게 잘 되는 곳을 입지로 선정하여, 해안가의 전망 좋은 산봉우리나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돌출된 곶(추)의 산봉우리에 위치한다.

연안 봉수는 해안의 경비와 초소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바다와 가깝고 해안의 감시가 용이한 위치에 설치되는데, 이러한 입지 조건은 현재의 군사 시설을 배치하는 데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 때문에 현재 봉수대와 그 주변으로 군사용 기물이 들어서 있는 곳이 많으며, 이로 인한 파괴와 훼손이 심각하다.

[기능과 변천]

울진 지역의 봉수대는 모두 7개가 있다. 이 봉수대는 남쪽의 영덕 대소산 봉수와 북쪽의 삼척 가곡산 봉수 사이에 설치되어 있으며, 모두 해안에 위치하여 연변 봉수의 기능을 하고 있다. 울진 지역의 봉수로는 강원도 연안변의 간봉으로 북쪽으로는 삼척 가곡산 봉수와 응해 통천 금란성 봉수와 이어져 제1거 직봉인 회양 소산 봉수로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영덕 대소산 봉수와 응해 제2거 직봉인 안동 봉지산 봉수로 연결된다. 울진의 봉수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 전하는 5개의 봉수로 가운데 제1거와 제2거를 연결하는 간봉로에 속한다.

울진 지역의 봉수대는 조선시대 전국의 봉수를 5개 노선으로 정리한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증보문헌비고』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이 자료들을 이용하여 만든 조선시대 봉수망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울진 지역의 봉수대가 간봉으로 직봉들을 연결하는 보조 노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세종실록(世宗實錄)』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는 울진 지역의 봉수대가 등장한다. 자료에 나타난 울진 지역 봉수대 봉수망의 연결 체계는 영덕 대소산 봉수대↔후리산 봉수대표산 봉수대사동산 봉수대전반인산 봉수대죽진산 봉수대죽변곶 봉수대항출도산 봉수대↔강원도 삼척 가곡산 봉수대로 나타난다.

이 봉수대들은 남북으로 이어져 북쪽으로는 제1거인 회양 소산 봉수대, 남쪽으로는 제2거인 안동 봉지산 봉수대로 연결된다. 즉, 동래에서 시작되어 동남 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영해에서 한 갈래는 안동 지역으로 연결되고, 나머지 한 갈래는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평해와 울진을 통과하여 강원도 고성(高城)에서 다시 목멱산을 향해 연결된다.

울진 지역 봉수대의 치폐(置廢)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문헌 사료상으로는 늦어도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가 편찬된 1656년까지는 사용되었으며, 『여지도서(與地圖書)』가 편찬된 1760년 이전에는 이미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봉수대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숙종 이전의 어느 시기에 해로(海路)가 바뀌면서 왜구의 침입이 없어지자, 관리에 소홀하여 숙종 연간에는 거의 폐허되어 기지(基址)만 남아 있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구조와 특징]

울진 지역 봉수대의 기단부는 토축이나 토석 혼축이 많으며, 평면형은 능선의 모양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원형이나 타원형이 많다. 길이와 장축 지름은 평균 21m, 단축 지름은 평균 15m이다. 높이는 사동산 봉수대항출도산 봉수대는 1m 내외이며, 표산 봉수대·전반인산 봉수대·죽진산 봉수대는 2m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기단부로 올라가는 출입 시설은 주변에 비해 낮고 완만하게 처리된 부분으로 출입했을 것이며, 그 방향은 동향·서향·남향·북향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연대는 석축이나 항출도산 봉수대·죽변곶 봉수대·죽진산 봉수대 등 훼손이 심각한 봉수대는 유실된 석축 대신에 토축으로 보충하였다. 평면형은 원형과 방형이 있으며, 현재 상부의 석축이 무너지면서 하부의 경계가 가려져 원형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하단의 석축으로 보아 전반인산 봉수대죽진산 봉수대는 원형이고, 나머지는 모두 방형이 기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훼손이 심한 항출도산 봉수대죽변곶 봉수대를 제외하면 평균 2.4m이다. 표산 봉수대·사동산 봉수대·항출도산 봉수대·가곡산 봉수대 등에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나선형으로 오르는 형식의 일부분이 확인되어 흥미롭다.

방호벽은 사동산 봉수대죽진산 봉수대에서 높이 1m 내외의 토축의 형태로 확인된다. 사동산 봉수대는 기단부 상부에 연대를 반쯤 둘러싼 형태이며, 죽진산 봉수대는 기단부 아래의 주변 지형을 반쯤 아우르는 형태로 차이가 있다.

[현황]

울진에는 전반인산 봉수대·죽진산 봉수대·죽변곶 봉수대·항출도산 봉수대가 있으며, 평해에는 후리산 봉수대·표산 봉수대·사동산 봉수대가 있다. 울진 지역 연변 봉수대간 직선상 거리는 최대 9~12㎞ 사이, 최소 7.5~8㎞ 사이 정도이며, 평균적으로 8㎞ 정도 된다. 봉수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어야 한다. 특히, 연변에 위치한 울진 지역의 봉수대는 안개와 우천 등의 특별한 제약이 없다면 육안으로 상호간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각 봉수대의 사용 시기는 수습 유물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 전기까지로 추정된다. 이는 문헌상 보이는 울진 지역 봉수대의 치폐 시기와 비슷하다. 울진 지역의 봉수대 가운데 유물이 수습된 곳은 사동산 봉수대·전반인산 봉수대·죽진산 봉수대·죽변곶 봉수대·항출도산 봉수대이다.

가장 오래된 유물은 항출도산 봉수대에서 수습되었다. 유물은 회색 고배 굽편, 짙은 회색 대부호 굽편과 함께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토기편, 조선시대 백자편과 무문기와편 등이 수습되어 이 봉수대가 오랜 기간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동산 봉수대에서는 고려시대 토기 외에 직선문 및 어골문 기와편과 함께 운문 분청사기 굽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이 봉수대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반인산 봉수대에서는 토기편과 구획 복합문·사격자문이 타날된 기와편이 수습되어 이 봉수대는 조선 초기경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죽진산 봉수대에서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토기 기벽편과 함께 백자 굽편이 수습되었다. 백자는 기형과 태토빚음눈받침 형식 및 내저원각 등의 특징으로 보아 16세기경의 것으로 보인다. 죽변곶 봉수대에서는 유물 수량이 많지 않으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토기편과 무문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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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울진지역 봉수대의 현황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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