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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551
한자 溫井里胎室址
영어의미역 Placenta Chamber Site in Onjeong-ri
이칭/별칭 절태봉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산146-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심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태실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산146-1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개설]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室)로 구분되는데, 아기태실은 최초로 설치한 태실을 말한다. 아기태실의 주인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 아기태실에 추가로 지상 가운데에 부도(浮屠)와 비슷한 석물을 치장한 후 팔각난간석(八角欄干石)을 돌리고 그 옆에 귀부가 있는 화려한 태실비를 세운 후에 가봉을 하는데 이것을 가봉태실이라 한다.

태를 봉안하는 제도가 시작된 시기는 문헌 기록상으로 신라시대 김유신의 태실부터로 확인된다. 이로 보아 늦어도 신라시대부터는 태를 봉안하는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실 장태(藏胎)의 풍속은 『고려사(高麗史)』, 『죽계별곡(竹溪別曲)』 등 고려시대 문헌 기록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왕실에서의 태실 제도는 고려시대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왕실 장태 의식은 중국에서도 보이지 않는 우리 고유의 풍속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태를 땅에 묻는 풍속이 있는데, 당(唐)나라부터 확인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장태 풍속은 김유신의 태실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앞선다. 또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을 보면 “태경지설(胎經之說)은 신라와 고려조간에 시작된 것으로 중국 옛날 제도가 아니다.”라고 명시하여, 우리나라의 장태 제도가 고유의 풍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태실은 거의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로 대부분 한강 이남 지역인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집중되어 있지만, 성종 이후부터는 경기도와 강원도에도 태실의 조성이 있었고 예외적으로 황해도 지역에도 설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태봉(胎峰)의 조건은 무덤을 선정하는데 있어서의 명당 조건과는 달리 들판[野中]의 둥근 봉우리[圓峰]을 택해서 산 정상에 내맥(來脈)이 없고 용과 호랑이[龍虎]를 마주 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국속(國俗)으로 되어 있었다. 태실이 조성되는 태봉은 명당 조건에 따라 3등분으로 구분되는데, 1등급에는 왕의 태실, 2등급에는 대군과 공주의 태실, 3등급에는 왕자와 옹주의 태실로 나누었으며, 금표 구역 역시 태실을 중심으로 왕은 300보[540m], 대군과 공주는 200보[360m], 왕자와 옹주는 100보[180m]로 규정하였다.

[위치]

온정면 온정리 백암온천에 들어서면 백암온천 주유소 뒤로 약 1.1㎞를 가면 온정1리 마을이 나오며, 온정1리 마을 옆 서쪽에 절태봉이 있다. 온정리 태실지는 주산으로 보이는 백암산의 서남쪽으로 경사를 두고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말단부에서 봉긋하게 솟아오른 절태봉 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태실이 있는 봉우리의 모양새는 흡사 삿갓을 엎어 놓은 듯한 형상이며, 사방의 비탈면은 약 30도 내외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태봉산의 바로 아래에는 서쪽에서 산의 남쪽을 휘돌아 동쪽으로 흘러 마을 앞을 지나가는 개천이 있다. 그리고 산의 남동쪽 바로 밑에는 절터가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와 편과 주춧돌이 나왔다고 한다.

[현황]

태실이 있는 산봉우리의 정상부는 긴 타원형의 평탄대지로 동서가 28m, 남북이 10m로 되어 있으며, 정상 곳곳에는 바위가 산재하여 있다. 특히 서쪽 끝은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태실의 흔적이 찾아지지 않지만, 절태봉이 독작골 서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과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독작골 서남쪽 태봉이라는 자료 등을 통하여 절태봉이 태실지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절태봉의 주변 환경도 풍수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태실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절터가 있었던 봉우리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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