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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608
한자 黃應淸
영어음역 Hwang Eungcheong
이칭/별칭 청지(淸之),대해(大海)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희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자|효자
출신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성별
본관 평해(平海)
대표관직 진보현감

[정의]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학자·효자.

[가계]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청지(淸之), 호는 대해(大海). 아버지는 목사(牧使) 황우(黃瑀)이다.

[활동사항]

1552년(명종 7)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독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였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어 도를 닦으며 즐겼고, 학문을 깊고 세밀하게 연구하였다. 장원서별좌(掌苑署別座)로 있을 때 나라에서 학문과 인품을 훌륭히 여겨 높은 벼슬을 주려고 찾아갔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에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점점 퇴폐되어 가자 대궐에 가서 네 가지 시폐(時弊)를 상소하니, 선조(宣祖)가 달갑게 받아들이고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제수하였다. 얼마 후에 벼슬을 버리고 귀가하여 명계(明溪)에 대해당(大海堂)을 세우고 조목(趙穆), 박성(朴惺), 이산해(李山海) 등과 교류하며 후진을 가르쳤다.

문하에 이름난 선비가 많이 배출되어 향풍이 크게 변하여 세상 사람들이 대해(大海) 선생(先生)이라 불렀다.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생전에 극진히 공경하였고, 어머니가 죽자 3년간 시묘를 살면서 매일 한 번씩 집에 와 아버지에게 문안을 하면서도 한 번도 내실에 들른 적이 없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기성지(箕城誌)』, 『향당헌(鄕黨憲)』, 『학사집(鶴沙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방율리 호전동에 있고, 신도비는 기성면 척산3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07년(선조 40) 효행이 알려져 왕명으로 효자각을 세우고, 향헌[향약]을 만들어 생활의 규범으로 하고 예도를 지켰다. 1671년(현종 12)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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