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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615
한자 普天太子
영어의미역 Bocheon Crown Prince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황정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왕족|종교인
출신지 경상북도 경주시
성별

[정의]

통일신라시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수도한 왕족이자 종교인.

[개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보천태자에 관한 기사는 울진의 대표적인 토속 신앙인 굴신(窟神)과 산천신(山川神)에 대한 숭배가 결국 불교 신앙, 즉 중앙 세력에 흡수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가계]

아버지는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이고,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이 되는 효명태자의 형이다.

[활동사항]

『삼국유사』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편에 의하면, 신문왕은 슬하에 보천효명 두 아들을 두었다. 어느 날 두 아들은 속세를 벗어나고자 오대산으로 들어가 여러 부처의 진신을 참배하고 각각 암자를 지어 수도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신령스런 샘물을 길어 1만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왕의 동생이 왕권을 다투다 쫓겨나자 신하들은 오대산으로 찾아와 보천태자를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 하지만 보천태자가 한사코 울며 왕위를 거절하므로, 대신 효명태자를 왕으로 옹립했는데 이가 바로 성덕왕이다.

한편 왕위를 거절한 보천태자는 신령스런 샘물 우통수를 매일 마시다 보니 어느 날 육신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이에 보천태자는 도를 닦기 위해 울진의 성류굴(聖留窟)[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종유굴.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갔다.

『삼국유사』 권3에 의하면 “보천은 늘 신령한 계곡의 물을 퍼서 마셨다. 만년에 육신이 공중으로 날아 유사강 밖에 이르러 울진국 장천굴[지금의 성류굴]에 머물렀다. 아침저녁으로 수구다라니 외우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굴의 신이 모습을 드러내어 말하기를 ‘제가 굴의 신이 된 지 2천 년이 되었지만, 오늘에야 처음으로 수구다라니를 들었습니다. 청컨대 보살계를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미 [보살계를] 받은 다음날 굴은 또한 형체도 없어졌다. 보천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21일을 머물다가 오대산 신성굴로 돌아와서 다시 50년간 수도를 하였다.”

이 내용은 성류굴에 2천 년 동안 굴신이 있었는데, 보천태자가 와서 수구다라니를 염송하기 전까지는 부처의 이름을 전혀 듣지 못하였음을 암시한다. 즉 이 지역에서 불교를 전혀 알지 못하다가 보천태자에 의해 보살계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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