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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755
한자 集姓村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집필자 이창언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개설]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로 구성된 부계혈연집단의 성원들이 특정 마을에서 다수를 이루고, 이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마을을 가리킨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마을에 동족부락·씨족부락·동성촌락·동족촌 등의 용어를 적용하고 있다. 여러 성씨들로 구성된 마을이나 특정의 우세한 성씨가 없는 각성촌락과는 대비되는 특성을 보이는 촌락이다.

[형성 및 변천]

집성촌은 조선 후기 사회 변동 과정에서 상속제도의 변화·주자가례의 보급·예학의 발달·종법적 가족제도의 수용을 배경으로 17세기 이후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조선 전기까지의 자녀균분상속·자녀윤회봉사의 양변적 친족 관행이 조선 후기에 부계혈연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동족의식의 고양되고, 부계 혈연 집단의 위상 제고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집성촌이 형성하고 발달하게 되었다.

부계 혈연 집단은 향촌 사회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위선사업을 명분으로 다양한 활동을 경쟁적으로 전개하였다. 족계 창립, 족보의 편찬, 서원·사우·누정·재실의 건립, 정려 포장 등이 이러한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에 따라 저명한 집성촌일수록 종택을 비롯한 기와로 지어진 다수의 고택·사당이 있고, 석물을 갖춘 묘소·제각 및 재실·서원과 사우·누정·강당·정려·민간신앙의 상징물 등의 경관적 특성을 갖추었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해 온 집성촌은 세월이 흘러 족세가 확장되면 분촌의 과정을 통해 세거지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집성촌의 확장 과정은 지파의 범위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근 지역에 새로운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원 거주지에서 십리를 벗어나지 않거나 면의 단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인근지역에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로 구성된 집성촌이 응집된 양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울진 지역에서는 안동의 하회나 경주의 양동과 같은 명문 거족의 후손들이 다수를 구성하는 집성촌과 같은 특성을 보이는 곳은 드물다. 더욱이 근래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과정에서 집성촌의 면모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평해황씨·평해손씨·평해임씨·담양전씨·신안주씨·영양남씨·파평윤씨·경주최씨·울진장씨 등을 비롯하여 울진과 평해의 토성으로 성장한 가문이나 조선 중기 이후 성장한 사족 가문의 후손들이 다수를 구성하는 집성촌은 다수가 존재하였다.

[현황]

울진 지역의 주요 가문의 후손들이 다수를 구성하는 집성촌의 존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울진의 토성인 울진장씨의 집성촌으로는 북면 신화리·울진읍 호월리·근남면 수곡리·기성면 기성리 등이 있다. 평해의 토성인 평해손씨들의 집성촌으로는 평해읍 학곡리·후포면 금음리·기성면 다천리·온정면 외선미리 등이 있다.

평해의 토성인 평해황씨들의 집성촌으로는 기성면 다천리·온정면 덕산리·평해읍 오곡리 등이 있다. 담양전씨북면신화리·죽변면후정리·봉평리·화성리·울진읍호월리·읍남리·명도리·근남면행곡리·매화면매화리 등에 집성촌이 있다. 파평윤씨들은 매화면 매화리금매리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울진 지역에 세거해 온 여러 사족들은 토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외래성이다. 이들이 울진에 정착하는 연유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울진이나 평해에 부임하였다가 정착하는 경우, 유배되었다가 정착하는 경우, 사화나 난을 피해 정착한 경우, 생활의 적지를 찾아 입향한 경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순흥안씨 울진 입향조 안오상은 조선 명종 때 황해도관찰사로 재임 중에 을사사화에 연류되어 평해군수로 좌천되자 관직을 버리고 기성면 황보리에 정착하였다. 현재 순흥안씨 후손들이 척산리·황보리·정명리·구산리를 비롯한 울진군 기성면 일대와 평해읍·온정면·매화면·근남면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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