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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981
한자 佛影寺浮屠
영어의미역 Stupa of Monk Yanghaedang in Buryeongsa Temple
이칭/별칭 양성당선사 혜능 부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산3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심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8월 5일연표보기 - 불영사 부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불영사 부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부도
양식 석종형 부도
건립시기/연도 1696년연표보기
재질 화강암
높이 176.5㎝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산34 지도보기
소유자 불영사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성당 선사 혜능의 부도.

[건립경위]

혜능 입적 후 다비를 하자 사리가 나와 부도를 건립하였다. 양성당 선사의 부도 비문은 조선 후기 학자 최석정(崔錫鼎)이 지었다.

[형태]

불영사 부도는 지대석, 기단석, 탑신의 3석으로 구성되었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종형 부도로서, 전체 높이 176.5㎝이고, 탑신의 폭은 83㎝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평면 방형의 지대석 위에 원형의 기단석을 각각 별도의 돌로 놓고 그 위에 일석으로 만든 종형의 신석과 보주형 상륜을 올렸다.

지대석은 대강 치석한 방형 대석으로 별다른 조식이 없다. 기단석의 옆면에는 8판의 중복련(重伏蓮)을 양각으로 장식하였으며, 상부에 원형의 탑신 받침을 호형으로 각출하여 신석을 받고 있다. 신석은 평면 원형으로서 하단이 약간 좁은데, 복부로 올라가면서 넓어졌다가 상부에 이르면 다시 하단과 같이 좁아진다.

신부 측면에는 장식이 없고 하부에는 6판의 앙련(仰蓮)을, 상부에는 14판의 복련을 장식하였으나 매우 형식적이며, 그 윗면에는 호형 1단의 원형 받침을 각출하여 상륜을 받았다. 상륜 하부에는 1단의 원대(圓帶)를 조각하였고, 그 정면에 연봉형의 보주를 조출하였는데 장식은 없다. 신석과 보주는 동일석으로 조성되었다.

[금석문]

부도비의 비신 앞면, 뒷면에 명문이 음각되었으며, 글씨는 해서체이다. 글자의 크기는 앞면의 경우 2.5×2.5㎝로 거의 모두가 비슷하나, 뒷면의 경우에는 3.5×3.5㎝의 크기도 있다. 금석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양성당대사의 법명(法名)은 혜능이고, 자는 중열(仲悅)이며 세속의 성은 남씨로, 그 선대가 고려 때부터 선사(仙槎)에 우거하여 후예들이 이를 관향으로 삼았다. 대사로부터 고조, 증조, 조 등 5대를 연이어 과거에 급제한 명문 집안이며, 모친은 행주전씨로 명망 가문이다. 모친이 꿈에 하늘의 신선을 보고 대사를 잉태했는데, 태어난 뒤에 이름을 몽선(夢仙)이라 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곧아 말을 함부로 아니하였고 형제간에 화목하게 처신하며 항상 출세의 뜻을 가지고 있어 부모가 기이하게 여겼다.

열두 살에 응철장로(應哲長老)를 쫓아 출가하여 계를 받고 8년간 정진하여 모든 불경을 통달한 뒤 천조대사에 나아가 묻고 또 호구당에게서 수행하여 크게 깨달아 막히는 데가 없었다. 성품은 침착 인후하고 보시하기를 기꺼이 하였으며, 계율을 엄히 지켰고 평생을 명산 고찰을 찾아 주류하기 좋아하여 두류산, 금강산,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소백산 등 그의 발자취가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는 스승을 찾아 도를 강론하여 초연한 넓고 큰 뜻을 가지고자 함이리라.

어느 날 홀연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탄식하기를 ‘도를 구하는 데는 다른 방도가 없으니 사람이 근본을 돌이키지 않는 것은 어찌 일찍 떠난 고향에 돌아감을 잊는 것과 다를 바 리오.’ 하며 마침내 불영사로 돌아와 머물며 수도하는 집에 현판을 달아 양성당(養性堂)이라 했다. 또 그곳에서 시를 읊었는데, 모두다 염불삼매 중에서 자연히 흘러나온 것 같았으니 그 한 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론을 마치고 염불에 날이 저물면

밝은 달 솔바람 타고 사립문을 닫아 거네.

고요하게 살면서 고요하게 흥취를 자득하니

온 경내 고요하여 꿈결인 듯 아늑하네.

이 시를 읽으면 마치 내가 부처와 연꽃 사이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병자 12월 17일에 앉은 채 입적하니 세속의 나이는 75세요, 법랍 64세이다. 다비하는 날 서기(瑞氣) 한 줄기 중천에 뻗쳐 수일 만에야 사라지고 드디어 금빛 나는 사리 3과가 나왔기에 부도를 절 동쪽 수십 보 지점에 세우고 그의 수제자 천옥(天玉)대사가 장차 비석을 세워 양성대사의 행적(行蹟)을 기록코자 홍우해(洪于海)를 통하여 나[최석정]에게 비문을 청하니 우해와 대사는 마치 주나라 문왕과 태전(太顚)과 같은 관계이므로 대사에 대한 사실 모두 기억하고 있어 나에게 상세히 말하므로 내가 듣고 가상하여 비문을 쓰고 명(銘)하노라.

부처님의 오묘한 뜻은 성(性)을 바로 보는 것이 가장 요점인데

대사는 능히 일찍 깨우쳐 깊은 이치 꿰뚫어 보고

참 가르침 더욱 터득하여 삼승(三乘)의 도를 극명히 밝히셨네.

아! 우리 대사여, 후세에 족히 징표가 되리.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최석정 지음

"養性堂禪師惠能浮屠碑銘 養性堂大師法諱惠能, 字仲悅, 俗姓南, 其先自麗代寓居仙槎, 後裔仍籍焉. 自師高曾祖, 連五代登虎榜, 母田氏籍幸州, 亦望族也. 母夢天仙而娠, 及誕名夢仙, 盖以此也. 師幼而質直, 不妄言語, 與昆季處, 嬉戲同樂, 而常有出世之意, 父母異之, 年十二, 遂從應哲長老, 受戒八閱歲, 淹通內外典, 就天照大師而質之, 又禮叅於虎丘堂, 證悟無礙, 性仁厚沉毅, 喜檀施嚴戒律, 平生喜遊名山, 憩頭流入金剛, 若五臺雉岳大小太白, 足跡殆遍焉. 盖欲尋師講道, 而超然有汗漫寥廓之意矣. 一日忽見征鴈而歎曰, 求道無方, 人不反本, 何異於弱喪忘歸, 遂歸故棲, 住天竺, 頤養精神, 顔其堂曰養性, 其所爲歌詩, 皆從念佛三昧中流出, 一絶云,

講罷蓮經日已昏, 松風蘿月掩紫門,

幽居自得幽居趣, 一境淸閒夢不煩.

讀之, 怳然坐我於曼陀優鉢羅間也. 丙子十二月十七日, 跂坐寂然而化, 壽七十五, 臘六十四, 茶毗之日, 瑞氣罩空, 數日乃滅, 遂得金光舍利三粒, 建浮屠于寺東數十步許, 其首弟天玉將立石紀其蹟, 因洪于海萬宗, 求銘於余, 于海之於大師, 若文公之於太顚, 備諳事實, 爲余言甚詳, 余聞而嘉之, 遂爲之銘曰,

釋有妙旨, 觀性最要,

師能蚤悟, 覰破幽眇,

剩得眞詮, 克闡三乘,

於我大師, 在後足徵.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崔錫鼎撰”.

[의의와 평가]

부도비에 이끼가 심하게 끼어 명문을 제대로 판독할 수 없었는데, 「양성당 선사혜능 부도비명(養性堂禪師惠能浮屠碑銘)」이 최석정의 문집인 『명곡집(明谷集)』에 실려 있어 혜능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명문에 의하면, 양성당은 1696년 12월 17일에 75세로 입적하였으며, 불영사 부도혜능이 입적한 1696년에 건립하였으나, 부도비는 1738년 2월 18일에 설치한 것을 알 수가 있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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