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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051
한자 張東維
영어음역 Jang Dongyu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인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경상북도 울진군
성별
본관 울진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사건(士建), 호는 고산(古山). 할아버지는 청파(靑坡) 장만시(張萬始)이고, 아버지는 장응채(張應彩)이다.

[활동사항]

장동유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과의 우애도 돈독하였다. 일찍이 아버지의 상을 당해서는 효를 다하지 못하였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여막을 짓고 묘를 지켰다. 현몽(現夢)으로 샘을 파서 물을 얻으니, 향인들이 지극한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형이 병이 들자 17년 동안 간병하였다.

또한 스승인 치암(致菴) 주명기(朱命杞)가 홀아비로 살고 있음에 조석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등창을 빨아 간병하는 등 심상 3년으로 효자의 도를 다하였다. 후에 장동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孝子閣) 주변의 언덕에 큰 나무가 태풍으로 넘어졌는데도 지붕의 기와 한 장 다치지 않는 것을 보고, 고을의 사람들은 공의 지극한 효성의 음덕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학문과 사상]

치암(致菴) 주명기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성리학설을 깊이 연구하여 『역학해(易學解)』를 저술하였다.

[상훈과 추모]

1869년(고종 6)에 정려(旌閭)를 세우라는 명이 내려졌으며, 이 정려를 명한 예조입안(禮曹立案)이 현존하고 있다. 효자비가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333-2번지 청고동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정려각의 형식은 장서린·주경안의 효자각과 동일한 형식이며, 정려판에는 ‘효자학생장동유지려(孝子學生張東維之閭)’라고 적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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