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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362
한자 梧谷里-洞神祭
영어의미역 Communal Village Ritual of Ogok-ri Nallasil Villag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2리 날라실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용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의례장소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2리 날라실 지도보기
신당/신체 동제당|위패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2리 날라실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동제.

[개설]

마을 입구에 있는 성황당에서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동신제 혹은 성황제라는 명칭으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동제를 지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으며, ‘최씨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당은 1958년까지만 해도 ‘ㄴ’자 모양의 돌에 제를 지내고 있었는데 돌 뒤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그 소나무를 잘라 제당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당이 낡고 마루가 썩어서 비가 새게 되자 2006년 노인회에서 1,000만 원, 산림계에서 500만 원, 마을 개인 찬조금 400만 원으로 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한 칸짜리 건물인 동제당을 신설하였다.

[절차]

제관은 음력 1월 10일에 회의를 통해 3명을 선출한다. 제관은 깨끗한 사람, 즉 흉사가 없는 사람, 임산부가 없는 집안, 아픈 사람이 없는 집안 등 부정의 우려가 없는 사람으로 선출하였다. 제관으로 선출된 사람은 1년 동안 흉사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제약을 받았다.

제관이 선출되면 바로 제관의 집에는 금줄이 쳐진다. 금줄은 왼새끼에 한지를 꽂은 것으로 제당에도 같이 쳐진다. 예전에는 우물에도 금줄을 쳤지만 지금은 치지 않는다. 황토는 마을의 산에 양지 바른 곳에서 색이 좋은 황토를 퍼 와서 사용한다. 황토도 제관의 집과 제당에 뿌리는데 요즘에는 마을회관에도 뿌린다. 황토는 두 줄로 제관의 집 앞과 제당의 앞에만 뿌렸다.

장을 보러 가는 것은 제관 3인이 맡아하는데 장을 보러 갈 때는 고개를 숙인 채 인사도 하지 않고 말없이 간다. 장은 주로 기성장, 평해장, 후포장, 영해장을 이용했는데 먼저 돌아오는 장을 이용했다. 장을 볼 때는 에누리 없이 음식을 샀으며 말없이 손을 이용한 수신호로 장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상인들도 그 수신호를 사용하여 물건을 팔았다고 하며 물건 값을 과도하게 부르면 자신에게 액운이 닥칠 것이라는 생각에 큰 바가지는 씌우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이 마을에 들어오면 제관의 집에서 음식을 하게 되는데 남자들은 장을 봐오고 여자들이 음식을 하였다.

지금은 장소가 마을회관으로 이동되어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마련한다. 마을회관에는 지금 동제 때 사용하고 있는 목기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마을 전체 행사에 사용하는 목기류와 동제 때 사용하는 목기류를 구분지어서 보관하고 동제 때 사용하는 목기는 동제 때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은 백설기[3되], 삶은 장닭, 가오리, 대구, 명태, 대구포, 탕[3탕: 육, 어, 채], 국[1국], 매, 술을 올린다. 요즘에는 술을 집에서 담그지 않고 막걸리를 사서 이용하고 있다. 제를 지내러 갈 때는 제관 3명만 간다. 이 3명 중 2명은 진설을, 나머지 한 명은 동제당 밖에서 부정풀이를 한다. 부정풀이는 객구[물에 밥을 말아서 뿌림]를 한다. 잔은 세 잔을 올리는데 첫 잔을 올린 후 축문을 읽고 나머지 두 잔을 마저 올린다.

축문은 세 명 중 한 명이 올리며 잔은 돌아가면서 올린다. 소지는 동신 소지를 먼저 올린 다음 동네 전체 소지를 올린다. 그 후 동네에 먼저 들어온 성씨별로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린 후 준비해 간 창호지에 음식을 싼 다음 음식을 보관하는 집에 넣어둔다. 음식을 보관하는 집이 당집 안에 마련되어 있는데 기왓장으로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다.

음식은 다음해가 되면 다 녹아 없어지고 닭의 뼈만 남는다. 제를 마친 후 음복 없이 바로 회관으로 내려온다. 그 후 제관은 자신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 이유는 마을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니 자신의 조상에게도 제사를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조상신에게 올리는 제사는 기제사와 동일하다.

제관이 조상신에게 올리는 제사가 끝나면 마을회관에 사람이 모여서 제관에게 절을 한다. 제관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도 제관에게 절을 올리도록 되어 있다. 제관이 제를 올리는데 고생을 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 후에 음복이 이루어지는데 음복 또한 나이에 상관없이 제관이 먼저 해야 나머지 사람들이 할 수 있다.

[부대행사]

제가 끝나면 놀이가 행해진다. 예전에는 지신밟기를 하였지만 1980년대 들어 맥이 끊기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농악패를 이끄는 우두머리[소리꾼]가 나이가 들어 죽게 되어 패를 이끌 사람이 없어지고, 마을의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서 마을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농악패가 23~2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농악패의 구성을 보면 상쇠 1, 부쇠 1, 징 2, 벽구 2, 장구 2, 무희 2~3[여장 남자], 상모 최하 5~6명에서 많게는 10여 명, 소의 탈을 쓴 사람 2명[2인 1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농악패의 건립은 이 마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마을의 요청으로 또는 읍면 단위의 요청으로 다른 마을에서도 이루어졌다.

기간은 보통 2~3일 동안 행해졌는데 마을의 행사나 일이 있어서 마을에 돈이 필요한 경우에는 적당한 돈이 모일 때까지 건립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목적이 없을 경우에는 그냥 놀음으로만 하였다. 지금은 강사의 초청으로 농악패를 되살리기 위하여 마을의 젊은이에게 농악을 지도하고 있다.

[현황]

유사가 동제 관련 문서를 보관하고 이 유사는 집마다 돌아가면서 1년 임기로 하였는데, 현재 마을의 동제 관련 문서는 마을회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박근식, 남, 71세,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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