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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리의 이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602
한자 王避里-二說
영어의미역 Two Tales of Wangpi-r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
집필자 김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공민왕|마의태자|마의태자 모후
관련지명 왕피리
모티프유형 공민왕마의태자와 관련된 피난처에서 유래한 지명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서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두 가지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으며, 울진군청이 2006년에 간행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내용]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의 마을 이름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935년경에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왕자 마의태자가 손씨(孫氏) 모후(母后)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 왔다가, 모후는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1361년 원(元)나라 말엽에 한산동(韓山童) 두목이 이끌고 온 홍건적이 고려 31대 공민왕 10년경에 남침하여, 왕이 이곳으로 피신한 곳이란 설이 있어 마을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왕피천변 아래쪽에 병위(兵衛)로 왕을 호위하는 호위병이 있었다 하고, 위쪽 가야는 당시 다리를 놓는 공병(工兵)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또 그 위쪽 마을 거리고(巨里庫)는 당시 군량과 군수품의 창고[병창기지]가 있어, 왕을 호위한 군사 주둔지로 전해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왕피리의 이설」의 기본 모티프는 마의태자공민왕이 피신한 곳과 관련한 전쟁과 지명유래 설화이다. 전쟁과 지명에 관련된 설화는 지형이 전쟁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내용과 전쟁 중의 피신처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왕피리 유래는 안일왕 혹은 에밀왕이 피신하였든 곳이라는데요 .
공민왕.어느 것이 맞는지요
201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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