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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918
한자 新興里大岑洞城隍木
영어의미역 Village Guardian Tree of Daejamdong Village in Sinheung-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 436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황목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 436 지도보기
보호수 지정번호 제11-33-6-3호
보호수 지정일시 1982년 10월 26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 대잠동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개설]

울진군 매화면 신흥1리 대잠동과 신흥2리 북수동에는 성황목으로 위하는 느티나무가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서낭제사를 지냈는데, 북수동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으나, 대잠동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5일 저녁 보름달이 떠오르면 서낭제사를 지낸다. 마을에서는 성황목을 서낭당, 또는 큰집이라고도 하며, 여기서 행해지는 마을 제사를 큰집 제사, 또는 서낭제사라고 한다.

[위치]

신흥리 대잠동 성황목은 마을 입구의 산자락이 끝나는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울진군 매화면 신흥1리 대잠동의 성황목은 수령 300년 정도 된 느티나무로서,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성황목 아래에 장판석으로 2단 석축을 쌓았는데, 이는 제수를 진설하기 위한 제단이고, 그 아래에 막돌을 이용하여 성황목을 중심으로 2단 석축을 둥글게 쌓았다. 이는 제관들이 서낭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서낭제사가 끝난 뒤 닭머리를 넣어두기 위해 블록을 가로로 눕혀두었다.

[의례]

제관은 세 명으로, 예전에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고 깨끗한 사람을 선정하여 제관으로 정하였다. 요즘은 마을에서 돌아가며 제관을 한다. 단, 부부가 함께 생존해 있는 집만이 제관을 할 수 있다. 마을 서낭제사와 관련한 문서와 동네 공사는 현재 김진업[72세]이 주관하고 있다.

서낭제사를 지내기 며칠 전에 제관이 금색[금줄]을 만들어 서낭당과 우물, 제관집에 치고 황토를 뿌렸다. 요즘은 서낭당과 제관집에만 금색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금색은 오른손 바닥에 왼손으로 비벼서 왼새끼를 만든 후 한지를 끼워 완성한다. 이때 금색 중간 중간에 짚의 대궁 쪽이 10㎝ 이상 빠져나오게 만든다. 느티나무 성황목 주위에 친 금색은 다음 해 서낭제사를 지내기 전까지 1년 내내 그냥 두어 신성 구역임을 나타낸다.

2007년 성심계(誠心契) 장거리 물목을 소개하면 유사는 남춘식과 장상욱이 수고하였으며, 2008년 유사는 김진업이 수고하였다. 구입한 제수는 대추·밤·불천지·양초·곶감·대구포·한지·장닭·배·사과·향·돼지고기·소주·정종·두부·음료수였다. 떡은 예전에는 백설기를 하여 시루째 올렸으나, 지금은 접시에 담아 조금 올린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장닭을 삶아서 제수로 올리는데, 제사가 끝나면 머리만 잘라서 성황목 아래에 블록으로 만든 함에 넣어 봉해 놓는다. 이는 고시레를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제의 순서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관댁에서 제수 준비가 끝나면 장닭을 잡아서 피를 성황목 주변에 뿌려 부정을 가셔냈는데, 지금은 물[1970년대 초까지는 마을 공동우물 물]을 뿌려 부정을 치고 있다. 서낭당 앞에서 모든 부정을 가셔낸 후 느티나무 둘레에 금색을 두르고 한지로 폐백을 올린다. 순서는 부정 치고, 제물 진설하고, 초헌관 술 올리고, 재배 후 축문을 읽고, 뒤 이어 아헌관과 종헌관이 차례로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재배가 끝난 후 소지를 올리는데, 순서는 서낭과 마을을 먼저 위한 후 제관 소지를 올리고, 이후 마을 내 모든 가구의 소지를 올려준다.

[현황]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 대잠동에서는 서낭제사를 운영하는 마을 자치조직으로 ‘성심계(誠心契)’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문서는 김진업이 보관하고 있다. 이 문서는 매년 성심계 지출 금액을 한지에 적어, 이전 해의 지출표에 덧붙여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에 상수도가 보급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마을 내에 있는 두 곳의 우물물을 이용하였다. 이에 매년 큰집제사를 지낸 후 곧장 우물고사를 지냈다고 하나, 상수도 보급 이후 우물고사를 지내지 않는다. 우물고사를 지낼 당시에는 서낭제사 전에 우물 청소를 깨끗이 한 후 금줄을 쳐서 제사가 끝나기 전까지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마을 위에도 우물이 있었는데, 이곳 역시 금줄을 쳐서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서낭제사 비용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충당하는데, 예전에는 동네답으로 논 2마지기가 있어 제수 비용을 충당하였으나, 지금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제물을 구입한다. 마을에서는 대잠 성황목을 큰집이라 하고, 놀이터로 여겨 여름에는 성황목 아래 많은 주민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상여는 반드시 서낭 앞을 지나야 하는데, 이때 서낭 앞에서 노제를 반드시 지내고 가야 했다. 결혼할 때 가마를 타고 가던 시절에 신부는 반드시 서낭 앞을 지나는데, 부정을 치고 온다는 의미로 짚을 태워 그 위를 넘어가게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울진군(울진군·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4)
  • 인터뷰(신흥1리 주민 김진업, 남, 72세, 2008.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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