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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와 아바이들이 만든 마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D020301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동

1900년 이후 죽변은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특히 인구변동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심하게 나타난다. 공동체 영역에서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는 이들은 약간의 인구 이동이 일어나지만 기본적으로 3대 이상이 거주하거나 또는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옆집의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이웃의 근황에 대해서 먼 친척보다도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죽변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자고 일어나면 낯선 사람들이 들어온다’라는 그들의 말은 이곳의 인구 이동에 대한 단적인 표현이다.

함경도 피난민들이 처음부터 죽변에 정착하고자 하였던 것은 아니다. 제주도의 잠녀들도 이곳에 정착하고자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이곳은 정착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가기 위한 경유지였다. 앞서 그들이 포항에서 내리고자 하였지만 실패하고 구룡포에서 얼마간 보낸 뒤 죽변으로 다시 왔다고 하는 점에서 결국 ‘아는 이’ 또는 ‘친인척’을 찾아 이곳으로 온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왜 죽변이었을까 제주도에서 울진을 거쳐 북쪽까지 나잠업을 했던 잠녀들과 함경도에서 남으로 피난온 아바이들은 왜 모두 죽변에서 머물렀으며, 죽변4리에 터를 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성급한 결론을 먼저 유추해 보면, 먼저 죽변항이 가지는 당시의 위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선의 수로조사를 실시한 일본인들은 여러 가지 조건들을 고려하면서 이주단지를 선정하였다. 그 가운데 죽변이 들어간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입지조건에서 죽변은 어항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사람이 거주하기에 좋은 조건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러한 사실은 죽변을 일찍이 다른 마을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제주도 잠녀와 함경도 아바이 모두 그 동기는 다르지만 아는 이가 없는 새로운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야 하는 점에서 동일하고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두 번째로 그렇다면 죽변에서도 왜 죽변4리에 터를 정했을까. 이는 죽변항에서 죽변4리의 위치에서 그 동기를 추적해 본다. 죽변항에서 죽변4리는 동쪽 끝 죽변곶이 위치한 언덕 너머에 위치한다. 죽변항에서 비교적 평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죽변항이 감싸고 있는 안쪽 만 부근이며, 지리적으로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곳이다. 그렇다면 고향을 떠나 홀홀 단신으로 이곳을 찾는 그들에게 과연 죽변항의 목 좋은 곳이 가능했을까. 그들이 이주하기 전부터 죽변은 이미 많은 인구로 인해 포화상태였으며, 그들에게 좋은 곳은 다른 이에게도 좋은 곳으로 이미 선점된 곳일 것이다.

잠녀와 아바이들이 머문 죽변4리는 동해안의 파도를 그대로 받으며, 도로에서 가장 안쪽에 속해 쉽게 눈에 띄지도 않는 그런 곳이었으며, 또한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아바이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때 또는 언제든지 배를 타고 떠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죽변4리였다. 구릉을 따라서 곧 떠날 수 있는 지붕 낮은 허름한 하꼬방을 짓기 시작하고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죽변4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돌아갈 수 없음을 확인했을 때 그들은 이곳에 하꼬방을 기준으로 낮은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죽변4리가 되었다.

그러나 잠녀와 아바이들이 죽변에 정착해 사는 과정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못했다. 이주 초기 현지 주민들로부터 여러 가지 괄시를 받았으며, 죽변의 선주들은 아바이들을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 잠녀들의 경우 애초 나잠을 위해서 이곳으로 왔기 때문에 고용의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지만, 아바이들의 경우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꺼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도 주로 아바이들끼리 행했으며, 현지 주민들과는 성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제주도 잠녀의 경우에도 죽변에 사는 사람과 결혼하기보다는 동향의 사람 또는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이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괄시하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터를 닦고 정착하였으며 마을을 형성하였다.

어떻게 보면 죽변4리는 잠녀와 아바이들이 만든 마을로 그들이 이주민이 아닌 토박이들로, 동네를 잘 알며 가장 오랫동안 거주한 이들이다. 실질적으로 이들보다 이 동네를 더 잘 아는 토박이는 없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에 대한 정보를 묻기 위한 토박이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이들을 소개해 준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경제적 삶을 찾아 또는 사회적 상황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새롭게 공동체를 형성한 곳이 바로 죽변4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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