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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까(오징어) 잡을라고 죽변에 정착하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D030203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동

거제도에서 이곳으로 육군후생사업의 일환으로 오징어를 팔고 건조하기 위해서 올라왔다. 오징어를 잡아 건조해서 파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떠돌아다니는 그들이 이곳에 와서 오징어를 잡아 건조하기 위해서 육군들과 함께 올라왔다. 또 떠나야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있었다. 그런데 그 해 오징어가 많이 잡히지 않고 배에서 할 일이 없게 되었다. 배는 계속적으로 머물고 시간을 보낼 수 없어 마을에 들어갔다. 비로소 죽변4리에 발을 붙인 것이다. 한 집에서 마당에서 나락을 치는 소리가 들리고 농사일을 경험했던 그는 일을 도와주면서 점심과 저녁 그리고 담배 한통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바다일이 없으면 농사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부산으로 거제도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오징어가 많이 나서 오징어로 돈을 벌기 위해서 올라왔는데, 그 해 오징어는 또 흉년이 들었다. 배에서 서로 뭉쳐서 그대로 거주하였고, 겨울을 보냈다. 봄이 되니 꽁치가 잘 잡히기 시작하였다. 뱃일을 하지 않는 이들은 슬슬 마을로 내려가 보망(그물을 손질하는 작업)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보망을 잘 하는 사람은 꽤 쏠쏠한 돈을 손에 쥐게 되었고, 이 돈으로 잠자리를 위한 판자를 이다가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당시 집을 짓는데 든 돈은 3300원이었다.

돈도 없고 잘데가 없던 고향 사람들은 누군가 판자집을 지으면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조금만 하꼬방(판자집)에 9명이 함께 거주하였는데, 당시에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냥 뜻이 맞고 함께 거주하며 그것이 가족이 되어서 하꼬방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그때까지도 이곳의 생활은 잠시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죽변에서 하꼬방을 짓고 살아갈 무렵 휴전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하꼬방을 늘이면서 정착을 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였다. 심정섭도 생활을 위해 일을 하면서 벌었던 돈으로 발동선을 샀다. 배운 것이 뱃질이라 오징어를 잡으면서 점점 돈을 불렸고 내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집도 지어 살고 있다.

죽변4리는 함경도 아바이들이 이제 주인이 되었다. 80%가 함경도 아바이들 그리고 20%가 제주도 해녀들로 구성된 이 마을에서 아바이들은 처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포항에서 구룡포로 그리고 거제도를 떠돌다 이곳으로 온 그들에게 지방텃세는 많았다. 이유없이 맞고 들어오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고기잡이를 위해 그물이며 망자를 구입하는데 팔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텃세를 넘어서면서 지금은 마을의 주인이 되었다. 죽변4리는 아바이들과 해녀들의 오히려 토박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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