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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 남편을 잃고 도부꾼으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E020202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집필자 신상구

19살에 시집와서 나이 마흔에 남편을 잃었다. 가정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남편이 잃고 나니 그 빈자리가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당장 먹고 살길이 또 막막해질 때 할 수 없이 다시 거리로 나갔다. 당시 생필품으로 팔리던 사카린, 성냥, 술약, 비누, 실 같은 물건을 사서 가까운 범상골, 섭실, 화성리를 돌아다니며 팔기 시작하였다. 장사가 되지 않아 고기장사를 따라다니면서 죽변 마축항에서 뗀 고기를 주변 일대에 팔러 다니는 일을 하였다. 하지만 벌이는 늘 제자리였고 하루 먹고 살기가 빠듯하였다.

좀 더 먼 곳까지 다니기로 마음먹고 미역과 노가리 같은 생선을 떼어 도부꾼들이 다닌다는 봉화를 향하는 길로 올랐다. 가진 밑천이 없어 좋은 물건을 못사니까 멀리 다녀도 많은 이문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다른 장사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물건을 떼어 봉화로 향하였다. 당시 도부꾼은 영주에 사는 다른 상인이 춘양장을 보러 가면 재미가 쏠쏠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돈을 2~3만원을 들여 미역과 오징어, 노가리, 말린 빵게 다리 등을 구입하고 춘양에서 팔고 나면 숙박비를 제외하고도 1만원이라는 큰 돈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은 다시 완행버스를 타고 하루를 걸러 돌아와야 했다.

당시 죽변에서 출발하는 이런 도부꾼들은 많았다. 한 조가 5~6명으로 이루어져 함께 출발하였고 춘양장에 도착하면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물건을 팔았고, 다 팔리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장소에 모여서 또 울진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였다. 비단 그녀만이 아니라도 울진에서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리고 특별히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시절 도부꾼은 여자가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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