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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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달·최흔봉·최문한을 시조로 하고 최복하·최운생·최두홍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강릉최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계통을 달리하는 고려초 삼중대광으로 개국공신이었던 최필달계, 고려 태조의 부마였던 최흔봉계, 고려 충숙황의 부마로 삼중대광에 오른 최문한계의 세 계통이 있다. 후손들은 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명주, 양양 지역에 세거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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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벌도리(蘇伐都利)를 시조로 하고 최한우·최형암·최영건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경주최씨의 시조인 소벌도리는 신라의 전신 사로육촌 가운데 돌산고허촌의 촌장이었다. 이후 신라 말의 석학 최치원을 중시조로 하여 그의 후손들이 26개 파로 분파되었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경주최씨들은 최청의 후손들인 관가정파와 최현우의 후손인 화숙공파를 비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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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현재의 울진 지역은 고려시대에 들면서 남쪽의 평해와 북쪽의 울진이 구분되어 읍격의 변화를 보인다. 남쪽의 평해는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적 상황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면서 북쪽의 울진과 구분되어 문헌에 기록되어 나온다. 이때부터 울진과 평해는 서로 다른 행정체계를 분명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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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지방통치구역. 대부분의 문헌 기록에서 평해군이 원래 고구려의 ‘근을어’, 즉 신라 땅이 아닌 본래 고구려의 땅이라고 하고 있다. 고구려가 468년(장수왕 56)에 삼척 지방을 장악하고 481년(장수왕 69) 미질부[현 경상북도 흥해]까지 남하하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이때 쯤 중간에 위치한 평해가 잠시 고구려의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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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제사일을 기록한 현판.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기일에는 전국적으로 노래와 춤이 금지되었고, 지방 관료들은 일체 공무를 보지 않았다. 또한 죄인들에게는 형벌을 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푸줏간에서 도살 행위도 일체 금지되었다. 이날 궁중에서는 국기제(國忌祭)가 거행되었고, 왕의 능침을 참배하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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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과 영양군, 남쪽은 영덕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접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에서 8번째로 면적이 크다. 지금의 울진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북쪽의 울진 지역과 남쪽의 평해 지역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행정 체계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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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었던 고구려 시대의 지방통치구역. 울진 지역의 통일신라 이전의 지명이 우진야(于珍也)이다. 이는 『삼국사기』[1145]를 비롯하여 『고려사』[1451], 『세종실록지리지』[1432],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대동지지』[1864]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고우이(古亏伊)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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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자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이며, 20여 개 지파를 구성하고 있다. 울진 지역에 세거하는 평산신씨들은 시조의 13세손 신현을 파조로 하는 판사공파와 시조의 15세손인 신효창을 파조로 하는 제정공파를 비롯하여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1592년(선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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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후리 망으로 고기를 잡던 곳이라 하여 후리포(厚里浦) 또는 후릿골이라 하였다. 삼한(三韓) 때에는 진한(辰韓)과 예(穢)에 속하였고, 신라 진흥왕 때에는 비량현(飛良縣)에 속하였다. 고구려 때에는 근을어현(斤乙於縣)에 속하였다가 영내현(榮乃縣)에 속하였고,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어 비량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무열왕 때에는 야음현(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