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사람·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접하여 갈령산이 경계가 되고, 서쪽은 봉화군 소천면에 접하여 낙동강 조항천이 경계가 된다. 서남쪽은 영양군 수비면과 일월면에 접하여 일월산맥과 고초령 백암산으로 경계가 되고, 남쪽은 영덕군 병곡면에 접하여...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군 병영진지. 월송포진은 문헌 사료에 "평해군의 동(북) 7리의 거리에 돌로 만든 수군 진이 있었다. 높이는 6(7)척, 둘레는 628(489)척이다. 만호(萬戶) 1인과 수군 400명 정도가 주둔하였는데, 전선(戰船)은 없고 바다쪽의 왜구를 막기 위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호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관직(...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육자배기」는 산 속의 나무와 식물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인연을 만나듯 화자 또한 정든 님과 만나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노래이다. 사설로 보아 전라도 지방에서 불리는 「육자배기」와는 상관성을 찾기 어렵다. 1991년 후포면 금음리에 사는 김말순[여, 64]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채...
-
1876년에서 1910년 사이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운동. 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화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광범하게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사회경제적 이해 관계, 운동의 방법에 따라 의병항쟁(義兵抗爭)과 계몽운동(啓蒙運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병항쟁은 반일(反日)적인 입장에 있던 모든 세력이 모여 계급 연합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에 있는 연못[沼]. 1780년경 탑평마을에 사는 지동지(池冬至)라는 사람이 아침 식사 전에 소(沼) 맞은편에서 건너다 보니 인기척이 있었다. 소리치며 가보았더니 암반 위에 적색 옷을 입은 청년 한 사람이 있기에 “웬 사람이냐?”라고 물은즉 청년이 대답하기를 고향이 전라도이고, ‘이심’을 잡으러 온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이심을 보았느...
-
거일리의 부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손춘권은 남제주군 성산포 시흥리에서 태어났다. 11남매의 9째로 태어나 제주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13세의 나이에 부모님이 모두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부산의 지장 대변에서 물질을 하고 있던 맏언니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언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처제들을 자식같이 대해준 형부의 덕분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특히 형부는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