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의 지리적 위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로 인해 신라시대에는 왜적을 막기 위해서 이곳에 죽변성을 쌓고 수군을 상주시켰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인들은 죽변곶에 망루와 등대를 설치하여 러시아군의 동해안 진출을 감시하였다. 죽변곶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등대는 일본인이 러시안군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그러나 등대의 건립 이...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외침에 대비하여 흙과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우리나라는 전체 면적의 약 70%가 산지로 되어 있어 일정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옛부터 자연적·인공적 외침에 대비하며, 스스로의 거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축조해왔다. 성곽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고...
성지는 축성(築城)의 목적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거주주체인 주민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행정·군사적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있으며, 두 번째로 순전히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성한다. 전자는 읍성이 그 대표적 형태이며, 후자는 산성이 이에 해당단된다. 죽변4리에 위치한 죽변성은 후자의 것에 속한다. 죽변성에 관련된 기록은 지지(地誌)에는 전하는 바가...
일찍이 연안어업도시로 성장한 죽변면의 죽변리는 4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마을에서 토박이를 찾을 수 없다. 인구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데, 이는 죽변항의 경제생활과 역사적 환경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나타난다. 죽변의 경우 일본인의 이주와 더불어 1900년대 초반 대거 일본인이 들어와서 마을에 정착하였지만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들이 떠나면서 동반적으로 경제생활을 누렸...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우진읍성의 옛터로 전해오는 신라시대 토축 산성. 신라 말 국력이 쇠잔해졌을 때 왜적이 죽변항의 방비가 소홀함을 보고 죽변항을 거쳐 장산성으로 내침하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고려 때 읍의 치소를 울진읍 고현성(古縣城)으로 옮기고 이곳 장산성을 수축하지 못하였다. 죽변면 후정1리 서편으로 장평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일...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신라시대 토축 성지. 죽변리 죽변성지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 때 신라 국경인 소공령(召公嶺)과 해상에서 오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토축으로 성을 조성하고 수군 2,000명을 주둔시켰다는 내용이 전해온다. 죽변성지가 위치한 일대는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적을 관측하고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내륙에서 바다로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