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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306
한자 窟神信仰
영어의미역 Folk Beliefs of the God in the Caves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시대 고대/고대
집필자 심현용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에 전해오는 고대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신앙.

[개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울진 지역에 굴신(窟神)과 산천신(山川神)이라는 고대의 토속적인 전통 신앙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울진 지역의 전통 신앙은 울진 지역에 수용된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는 372년(소수림왕 2) 고구려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백제는 384년(침류왕 1)에 수용했으며,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눌지왕[417~458] 때 전래되어 527년(법흥왕 14)에 비로소 국가에서 공인하였다. 불교가 당시의 서울인 경주로부터 먼 울진 지역에까지 파급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울진 지역에 불교가 수용된 시기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울진 지역에 있는 불영사·대흥사·신흥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대천사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문헌 기록과 굴신 신앙]

울진 지역에 굴신과 산천신이라는 신앙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불교 신앙에 흡수되었다. 이 전통 신앙의 연원은 ‘장천굴[지금의 성류굴]’과 ‘악발산’이라는 곳에서 시작된다.

『삼국유사』 탑상4 「대산오만진신」과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에 의하면, 울진의 장천굴에 2천년 동안이나 굴신이 있었는데, 보천태자가 와서 수구다라니를 염송하기 전까지는 부처의 이름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울진 지역에서 불교라는 종교를 전혀 알지 못하다가 보천태자에 의해 전해져 보살계를 받고 불교에 귀의했음을 의미한다. 또 『삼국사기』 권32 잡지, 제사조에 의하면 우진야군[지금의 울진]에 악발의 산천 신앙이 있었으며, 이 산천 신앙은 결국 신라의 국가적인 명산대천제(名山大川祭)에 소사로 편제되어 흡입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 각 지역의 신앙 체계와 토착 세력을 왕실 및 중앙 세력 중심으로 재편제하고 체계화한 데서 나온 것이다. 즉, 굴신이 불교에 귀의한 후 굴의 형체가 없어져버렸다는 것과 악발 신앙이 국가적인 제사에 선정되어 국가제도에 흡수되는 것은 울진 지역의 토착 신앙 체계가 불교 신앙 체계로 완전히 흡수되어 토착 신앙을 숭앙하는 재지 세력들이 해체되고 약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울진 지역의 토착 신앙이 그동안 강인하게 유지되어왔다는 것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울진 지역에 불교가 유입되기 전에는 토속 신앙인 굴신과 산천신이 강하게 유지되어오다가, 7세기 말~8세기 초에 중앙 세력에 의해 불교 신앙이 전파됨에 따라 토속 신앙은 서서히 사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 자료와 굴신 신앙]

최근에 울진 지역의 청암사지에 대한 발굴 조사로 7세기 후반의 인화문 토기가 확인되었다. 청암사지에 남아 있는 구산리 삼층석탑[일명 청암사지 삼층석탑]은 9세기 후반에 건립되었다. 이러한 자료는 울진에서 현재까지 확인되는 불교 관련 유물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 석탑은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석탑은 634년(선덕여왕 3)에 건립된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석탑의 건립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수도인 경주로부터 원거리에 위치한 울진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울진 지역에서 확인된 가장 빠른 불교 관련 유물은 7세기 후반의 인화문 토기와 9세기 후반의 구산리 삼층석탑이다. 특히, 7세기 후반의 청암사지에서 출토된 토기는 보천태자가 울진 지역에 와서 장천굴의 신을 불교에 귀의시키는 시기와 비슷하여 『삼국유사』의 기록에 대한 신빙성을 더욱 높여준다.

신라 법흥왕 때 불교가 공인되고 나서도 수도인 경주와 먼 울진 지역에는 아직 불교가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토속 신앙이 긴 기간에 걸쳐 유지되었다. 울진 지역에는 늦어도 7세기 말~8세기 초에 이르러 보천태자에 의해 불교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민간에까지 깊숙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청암사가 창건되는 9세기 후반부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산천 신앙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후 국가적인 명산대천제에 소사로 편제됨으로써 울진 지역의 토속 신앙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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