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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391
한자 獨松亭遺墟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Filial Piety of Doksongjeong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인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건립시기/일시 1975년 4월연표보기
관련인물 주세창[?~1571]
재질 화강암
높이 170㎝
너비 42㎝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지도보기
소유자 신안주씨 문중

[정의]

1975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주세창이 세운 독송정을 기념하는 비.

[개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청고동 독송정 터에 있는 유허비이다 비석을 세운 이는 종손인 주장환(朱章煥)과 외손인 손등구(孫䓁鳩)이며, 비문을 지은이와 글씨를 쓴 이는 전원식(田元植)과 정문석(鄭文錫)이다. 1973년에 비문이 완성되고, 1975년 4월에 건립되었다.

조선 중기 인물인 주세창(朱世昌)의 자는 대유(大猷)이며, 호는 독송(獨松)이다. 사직(司直) 주행(朱幸)의 아들로 효성이 매우 지극하고 학행이 빼어났다고 한다. 주세창이 시묘할 때 매일 상식(上食)을 올리면 수저 소리가 들리고, 차를 올릴 물을 긷는 곳이 멀자 호랑이가 묘 옆에 우물을 파주었다고 한다.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아름답게 여겨 베 삼백 필을 상으로 주고 연일·경원·의주 교수를 제수하였다.

또한, 주세창이 농암(聾岩) 이현보(李賢輔), 송강(松江) 정철(鄭澈), 월천(月川) 조목(趙穆)과 주고받은 시가 전하고 있으며, 정필달(鄭必達)이 울진현 현령으로 있으면서 독송정의 풍경을 읊은 독송정기가 전하고 있다.

[건립경위]

독송정은 1550년(명종 5년) 주세창이 창건한 것으로 선조송강 정철이 관동안무사(關東按撫使)로 울진현을 순찰하던 중 독송정에 올라 시를 지어 주인인 주세창에게 주었다. 그 후 한 그루 노송(老松)은 넘어지고 정자가 무너진 것을 현령 정필달이 1671년(현종 12) 중건하여 석축을 하였으나, 오랜 세월로 퇴락되어 고성리 신안주씨 본가 오른편에 옮겨 세웠다. 그러나 독송정이 화재로 타자 다시 고쳐 짓지 못하고, 독송정 자리에는 후손들이 1975년 4월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독송정 유허비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청고동 도로변에 있으며, 청고동 동쪽은 울진읍 읍내리와 접하고 있고 국도 7호선이 지나고 있다. 청고동 남쪽은 남대천이 흐르고 그 너머에는 가원동월계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형태]

독송정 유허비는 서쪽을 향한 입구를 제외한 3면이 시멘트 담장으로 둘려 있으며, 도로에서 오를 수 있는 시멘트 계단이 있다. 독송정 유허비는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으며, 지붕돌과 비신, 비좌를 모두 갖추었다. 지붕돌은 가로 73㎝, 높이 43㎝, 세로 42.5㎝이며, 비신은 높이 127㎝, 너비 42㎝이다. 파묻혀 윗부분만 드러난 비좌는 가로 85㎝, 세로 48㎝로 전체 높이는 170㎝이다.

[금석문]

비신의 앞면에는 글자 크기가 가로 15㎝, 세로 15㎝로 “독송정유허비(獨松亭遺墟碑)”를 세로로 새겼고, 옆면과 뒷면에는 글자 크기 가로 2㎝, 세로 2㎝로 비문과 비문을 지은이, 글쓴이, 비석의 건립 연대를 새겼다.

[현황]

비석에 오르는 통로를 계단으로 정비하고, 비석의 둘레를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 훼손을 막고 있다. 비석의 보존 상태도 좋아 비문 대부분을 읽을 수 있으며, 독송정 유허비라는 이름처럼 주변에는 노송 몇 그루가 잘 자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대표적인 문인이던 정철, 이현보, 조목 등과 교류하던 신안주씨 주세창의 인물 자료와 주변에 대한 풍광을 읊은 문학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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