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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574
한자 安五常
영어음역 An Osang
이칭/별칭 경윤(景倫),죽계(竹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노동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인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입향조
성별
생년 1483년연표보기
몰년 1555년연표보기
본관 순흥(順興)
대표관직 황해도관찰사겸수군병마절도사(黃海道觀察使兼水軍兵馬節度使)

[정의]

조선 중기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순흥안씨 입향조.

[개설]

안오상은 사초 문제에 연좌되어 평해군수(平海郡守)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노동리에 정착하여 순흥안씨 평해파를 형성하였다. 1831년 대홍수로 인하여 30세손 안하원(安夏源)이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자산마을로 이주하여 순흥안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경윤(景倫), 호는 죽계(竹溪). 할아버지는 감찰 안식(安湜)이며, 아버지는 현령 안영보(安永保)이다.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참봉 송극기(宋克己)의 딸이다. 부인은 월성이씨(月城李氏)로 승지 이사충(李思忠)의 딸이다. 순흥안씨 울진 입향조이다.

[활동사항]

학문에 힘쓰고, 올바르고 떳떳하게 처신하여 명성이 나면서 현릉[조선 문종의 능] 참봉이 되었다. 안렴사(按廉使)로서 관동(關東)에 부임하여 많은 치적을 남겼다. 이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정랑(戶曹正郞)에 이르고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를 제수 받았으나 분수에 맞지 않는다 하여 부임하지 않았다. 이때 조정의 관리들이 대립하는 기미가 보이자 시흥 백사동(栢寺洞)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 후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제수 받았는데, 백성들의 어려움을 잘 돌보아 주어 백성들이 노래로써 덕을 기렸고 조정으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았다. 이때의 치적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조선시대 종2품 문무관의 품계]로 특진하였다. 1545년(인종 1) 양재역벽서사건[정미사화]에 연좌되었으나 재주와 덕을 갖춘 학자로서 치적이 높고 흠결이 없어 겨우 화를 면하였다.

1548년(명종 3) 족친인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안명세(安名世)가 사초(史草)의 내용과 관련하여 죽음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집안이 적몰되었는데, 이에 연좌되어 평해군수로 좌천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노동리에 정착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 노동산에 있으며, 부인과 합장묘이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경모재(景慕齋)를 건립하여 입향조를 추모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7일 황보리 묘소에서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올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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