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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산불영사 시창기 현판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963
한자 天竺山佛影寺始創記懸板
영어의미역 The Hanging Board Engraved Establishment of Buryeongsa Temple
이칭/별칭 천축산 불영사 시창기 현판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122[불영사길 48]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심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현판
제작시기/일시 1370년(고려 공민왕 19)연표보기
제작지역 울진
재질 목재
길이 98.2㎝
너비 41.8㎝
소장처 불영사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122[불영사길 48]지도보기
소유자 불영사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소장되어 있는 불영사의 창건기를 새긴 현판.

[개설]

불영사 시창기 현판에 새겨진 「천축산불영사 시창기(天竺山佛影寺 始創記)」는 1370년(공민왕 19) 한림학사 유백유(柳伯濡)가 쓴 것으로, 기문에 따르면 유백유는 신라의 옛 비석에 근거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전설적인 경향이 강하다.

창건기에 따르면 불영사는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그 해에 의상(義湘)은 동경(東京)[지금의 경주]에서 해변을 따라 단하동(丹霞洞)[지금의 불영사 부근]에 들어와서 해운봉(海運峰)에 올랐다. 그는 북쪽을 바라보고 감탄하기를 서역 천축산을 바다를 건너 만들어 놓은 듯하며, 또한 계곡물 위에는 다섯 부처님의 영상이 비치니 더욱 기이한 곳이라 하였다.

의상은 하류로 내려와 금탑봉에 오른 뒤 그 아래에 못에 사는 독룡에게 설법하여 절을 지을 땅을 베풀기를 청하였으나 용이 따르지 않았다. 법사가 주술을 부리자 용은 산에 구멍을 내고 돌을 깨뜨리며 사라졌다. 그 후 의상대사는 절을 세우기 위해 못을 메우고 동편에 청련전(靑蓮殿) 3칸과 무영탑(無影塔) 1기를 건립하였으며, 땅을 비보하는 뜻으로 ‘천축산 불영사’라 편액했다고 전한다.

676년(문무왕 16)에 당에서 귀국한 의상이 다시 불영사를 향해서 가다가 어느 마을에 이르렀는데 한 노인이 "우리 부처님이 돌아오셨구나." 하면서 기뻐하였다고 하여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불영사를 부처님이 돌아오신 곳이라 하여 불귀사(佛歸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후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시창기에 따라 불귀사로 기록되어 있다.

[형태]

현재 불영사 시창기 현판은 목재로 크기는 세로 41.8㎝×가로 98.2㎝이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글씨를 음각하였다.

[의의와 평가]

불영사의 창건 내역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사료로 불영사의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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