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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 황화실 현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972
한자 佛影寺黃華室懸板
영어의미역 Hanging Board of Hwanghwasil Hall of Buryeongsa Temple
이칭/별칭 현판 황화실,황화실 편액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122[불영사길 48]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심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현판
제작시기/일시 조선 전기
제작지역 울진
재질 나무
길이 113.5㎝
너비 63㎝
소장처 불영사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122[불영사길 48]지도보기
소유자 불영사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 황화실에 있는 조선 전기 현판.

[개설]

황화실(黃華室)불영사의 대웅보전 왼쪽인 동쪽에 있는 건물이다. 울진현감 백극재(白克齋)가 이 건물에서 환생했다고 하여 환생전(還生殿)으로 불렸다. 이문명(李文命)이 쓴 불영사의 「환생전기(還生殿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396년 백극재가 울진현감으로 제수된 지 3개월만에 홀연 급서하였다. 부인 이씨가 이 근처에 기도처가 없는지를 물으니, 한 아전이 불영사가 있다고 하였다. 부인은 속히 수레에 관을 싣고 분향하게 하고, 불전에서 울며 삼일 낮밤 기도할 즈음 갑자기 남편이 환생하니 불당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이에 불전을 환생전이라 하고 금자로 연화경 7축을 써서 부처님의 은혜를 받들어 감사하였다고 한다.(昔光山白先生克齊除蔚珍縣, 下車三月 忽然而逝, 夫人李氏問此境有可禱處否, 一吏曰有佛影寺在, 夫人趣令轝櫬焚香, 泣祝於佛前, 三日三夜, 奄然還生, 卽以塔寮爲歡喜寮, 佛殿爲還生殿, 因寫金字蓮經七軸, 仰謝佛恩云云)”

환생전이란 명칭이 황화실로 바뀐 시기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명칭이 바뀐 시점에서 이 현판을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후기 김창흡이 「울진산수기(蔚珍山水記)」를 쓸 때까지도 환생전으로 기술한 점에서 황화실로 명칭을 바꾼 시점은 적어도 그 이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현판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63×113.5㎝이다. 글씨를 쓴 사람은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조선 말기로 추정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5.26 [정의], [개설]의 시대 수정 <변경 전> 조선 중기 현판 / 조선 중기 백극재가 <변경 후> 조선 전기 현판 / 1396년 백극재가
이용자 의견
이** 참고로 김창흡의 생몰년은 1653 ~ 1722년 입니다. 또 하나 덧붙이면 . 이문명의 실제 관직명은 공안부판관(恭安府判官)이고 조선왕조실록 (태종 16권,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조에 여러번 나옵니다. 현판의 안부판관(安府判官)은 안동판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안부판관(恭安府判官)의 약칭입니다.
  • 답변
  • 디지털울진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05.23
이** 본 현판은 조선 중기 이전으로 보입니다. 아마 이현판을 보고 김창흡이 쓴 "三淵集拾遺卷之二十三"의 울진산수기(蔚珍山水記)를 보면 동일 내이 나오는데 영락6녕에 안동 판관(安東判官) 이문명이 쓴 "환생전기"라고 적혀 있는데, 본내용은 안부판관(安府判官)이라고 바르게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현판을 보고 김창흡이 안동판관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답변
  • 디지털울진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5.23
이** 이문명이 영락 6년(1408년)에 본 환생전기를 지었으므로 조선중기 백극제는 고려 말엽으로 바꿔야 합니다. (원문에도 "차(昔:예전에)"f라고 만 되어 있습니다.
  • 답변
  • 디지털울진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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