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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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基周 |
영어음역 | Yi Gij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은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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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
성별 | 남 |
생년 | 1899년 12월 23일 |
몰년 | 1978년 |
대표경력 | 경상남도지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기주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공립 원명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7년 선배인 윤현진에게서 감명을 받아 상경하여 3·1운동의 준비를 도왔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기주는 고향으로 돌아와 3·27 양산의거에 참여하였다. 1920년 양산청년회가 결성되어 김철수가 회장이 되고, 이기주는 간사장이 되어 고향 청년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하고 지도하였다.
1928년에는 양산청년회 간부들과 주도하여 신간회 양산지회를 설립하고, 1931년 4월 양산 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던 양산농민조합을 조직하는 데 신간회 양산지회 간부로서 참여하였다. 또한 의열단의 군자금 조달을 돕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부산중앙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1960년 초대 민선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하였으며, 1978년 사단법인 3·1 동지회 이사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