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B03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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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현우 |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최초의 입향조를 살펴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아랫삼천리 장촌의 경우 입향조는 수군절도사 장익견의 부친인 장세현 공으로 약 300여 년 전에 입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윗삼천리 조촌의 입향조는 조선 숙종 대의 조일상 공으로, 장희빈을 몰아내는 데 일조한 인물이라고 한다.
윗삼천리에 처음 조씨들이 들어왔을 때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조희복 옹의 6대조 할아버지이신 조영성 공 이후 부터 마을의 규모가 커졌다. 조영성 공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분은 자손을 두지 못하였고, 나머지 네 형제가 자손을 퍼뜨려 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아랫삼천리의 안동장씨 시제는 음력 10월 11일에 지낸다. 입향조인 장세현 공의 묘 주변에 안동장씨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수군절도사를 지낸 장익견 공의 묘만 따로 떨어져 있다가 20년 전에 도로를 새로 내면서 장익견 공의 묘도 함께 안동장씨 묘역으로 이장했다.
이장 전에는 장익견 공의 제사를 따로 10월 13일에 지냈는데 이제는 11일에 함께 지낸다. 윗삼천리의 창녕조씨 시제는 음력 10월 초아흐레에 입향조인 조일상 공의 묘 앞에서 지낸다.
시제는 시향(時享)이라고도 부르는데 매년 음력 10월에 친진묘(親盡墓)에 지내는 제사이다. 4대조가 지난 조상의 무덤을 친진묘라 하여 매년 지내는 기제사를 못 모시는 대신 올리는 제사이다. 묘사라는 말처럼 조상의 무덤에서 올리기도 하지만 여러 대에 걸친 조상을 모시는 제사이므로 제각(祭閣)에서 모시거나, 제각이 없는 경우에는 종계(宗契) 자손들의 집에서 번갈아 모시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요즘 묘사라고 하는 것은 시제 또는 시향을 일컫는 말이다.
시제는 모든 제사의 으뜸이자 표상이었다. 따라서 가문에서 행하는 일종의 축제이기 때문에 후손들이 함께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며 조상의 음덕을 칭송하는 날이기도 하다. 비록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정성껏 준비한 제수로 예를 다해 제사를 봉행한다. 제사가 끝나고 둘러 앉아 그간의 궁금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끈끈한 가문의 정을 서로 나눈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시제가 끝나고 배분받은 떡과 음식으로 며칠씩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고 한다.
시제는 진찬(陳饌), 강신(降神), 참신(參神),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진숙수(進熟水), 사신(辭神)의 순서로 제례를 지낸다. 진찬은 제사에 올릴 음식을 차리는 것이고, 강신은 제주(祭主)가 조상의 신위에 분향하고 재배한 뒤 술을 올리는 것이며, 참신은 신주에 절을 올리는 것이다. 가문 안팎에 덕망 있는 분들을 헌관으로 모셔 초헌, 아헌, 종헌의 잔을 올리고, 탕, 나물, 물 등의 음식을 번갈아 올리는 것을 진숙수라 한다. 대개 참신 이후 초헌의 잔을 올리기 전 축문을 낭독하며, 사신은 제사 이후 조상의 신위를 돌려보내는 절차로 마지막 재배를 올리고 지방과 축문을 태우는 등의 일을 뜻한다
제사를 마치고 조상을 모신 신령스러운 복을 마신다는 음복례(飮福禮)를 할 즈음이면 엄숙한 제례의 의식은 끝나고, 다시 잔치 마당의 술렁임으로 돌아온다. 시제는 죽어서 잊힌 조상들이 봄같이 따뜻한 가을을 산 자들에게 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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