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D02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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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영의 |
‘풍요로운 섬’이란 뜻의 풍도(豊島)는 지리적으로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 앞바다 12㎞에 위치하지만 행정구역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속하는 곳으로, 대부도에서 30㎞ 정도 떨어진 낙도이다. 1910년대 이후 100여 년 동안 풍도 사람들은 풍도에서 20㎞ 떨어진 도리도라는 무인도에 풍성한 조개밭을 일구어 놓았다.
김계환[71세] 도리도 통장에 따르면 “도리도는 물이 없는 무인도지만 바지락에 낙지에 소라, 키조개 등 안 나는 게 없는 섬이었다.”고 한다.
풍도는 대부분이 산지로 논은 없으며, 동네 산기슭에 밭이 조금 있을 뿐이다. 농업과 어업을 겸할 수 없는 환경으로 오직 바다에 의존해 살아야 하며, 이 때문에 갯벌이 없는 본섬의 주민들은 해마다 겨울이 들 무렵 생계를 위하여 도리도 어장의 바지락 채취를 위해 섬을 떠나는 ‘겨울나기 철새 이동’을 해야 했다.
그런 생활을 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예전에 풍도에 사는 한 할아버지가 배를 몰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무인도인 도리도를 처음 발견했단다. 그런데 갯벌에 지천으로 깔린 것이 조개였는데, 그 사이사이로 걸어다니는 낙지는 손으로 주워 담을 정도로 많고, 굴은 거짓말 안 보태고 손바닥만 하더란다. 그 후로 풍도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가을이면 도리도로 이사 가는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조개는 종패를 뿌리고, 굴 양식용 돌도 갖다가 놓고 하였단다.
도리도의 바지락은 알이 굵고 한 곳에서 많이 나서 상품 가치가 매우 높은데, 이 때문에 풍도 사람들은 4년마다 한 번씩 전라북도 고창 심원마을 양식 바지락 농장 등지에 종패를 팔기도 했다. 겨울 한철 도리도에서 거둔 수입으로 1년 먹고 살 돈이 생겼다고 할 만큼 도리도에 대한 풍도 사람들의 의존도는 높았다.
그렇게 풍도 사람들은 4~6월, 11~12월 5개월 동안 굴과 바지락을 캐기 위해 도리도로 이사를 갔는데, 이 일을 두고 ‘현대판 출애굽기’라고 한다. 주민들이 기르던 개까지 데리고 무인도로 거처를 옮기면 학교도, 경찰초소도, 교회도 함께 이주했다.
처음에 주민들은 도리도에서 군대 막사 같은 임시 거처를 짓거나 토굴을 파고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도리도에는 식수가 없기에 풍도와 도리도에 배로 물을 길어 가는 일을 마을 사람들이 당번제로 담당했다고 한다.
“땔나무와 물, 이부자리까지 배에 가득 싣고 도리도로 건너갔지. 무인도인 도리도는 나무가 없는 바위섬이어서 집을 짓지 못해 토굴을 파고 산 사람도 많았어. 사는 게 말이 아니었지.”라고 말하는 이기일[76세] 옹은,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참으로 고생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다가 1982년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이들의 열악한 토굴 생활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방송을 햇는데, 우연히 이를 본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아직도 이런 생활을 하는 곳이 있냐?”며 생활환경 개선을 지시한 덕에 정부에서 풍도 주민을 위해 도리도에 방과 부엌 한 칸씩의 연립주택 50동과 선착장 시설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도리도는 2004년 화성시에 편입되었고, 이후 화성시와 풍도 사람들 사이에 도리도 어업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화성군수가 2004년 4월 1일까지 풍도 사람들의 도리도 철수를 요구하면서 어업면허권 기간갱신을 거절하자, 풍도 사람들은 버려진 땅을 개발해 그동안 가꿔 온 기득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풍도는 농토가 없어 풍도에서 나는 물산만으로는 살기가 어렵기에 “이리 굶어 죽으나 저리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결사적이었다. 도리도 바지락밭을 내 땅처럼 아끼며 돌봐 온 풍도 사람들에게 ‘도리도 철수’는 풍도에서도 살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이 없었다.
사실 화성 쪽 어민들과 풍도 사람들은 5년 전까지도 사이좋은 이웃이었다. 그런데 시화·화옹·구봉지구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조류가 바뀌면서 화성 쪽 어민들이 하루 15~18톤씩 동죽을 캐던 서신면 송교리 동죽 갯벌 수백만 평이 졸지에 ‘조개무덤’으로 변해 버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화성 쪽 어민들이 행정구역상 화성시 서신면에 속한 2만 9,000㎡의 작은 무인도 도리도가 육지에서 떨어진 덕분에 ‘황금 갯벌’로 살아남자 어업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하여 뒤늦게 ‘도리도 어업권’을 둘러싼 양쪽의 ‘바지락 전쟁’은 급기야 법정소송으로 번졌으나 끝내 풍도 주민들은 패소했다고 한다. 이제 풍도 주민들은 더 이상 그곳에 건너가지 못하게 됐다. 풍도 사람들은 “섬을 완전히 빼앗겼다.”고 말한다. 풍도어촌계 간사 김명남[69세] 씨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무인도에 돌을 놓아 굴 양식장을 만든 게 우리”라며 “마을 처녀가 바다에 빠져 죽은 일이 있을 정도로 지금껏 죽을 둥 살 둥 하며 지켜왔다.”고 말하며, 도리도 어장의 바지락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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