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968
한자 自隱影堂
영어공식명칭 Jaeun Yeongdang[The Place Where the Portrait of ‘Hong Man-jo’ is Enshrined]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휴대세교길 257-11[세교리 1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여송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조선시대 - 자은영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5년 - 자은영당 1차 정비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8년 - 자은영당 2차 정비 보수, 추원각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 - 자은영당 3차 정비 보수, 단청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2년 - 자은영당 경모문 건립
현 소재지 자은영당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휴대세교길 257-11[세교리 17]지도보기
성격 사우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는 홍만조의 영정을 봉안한 조선 후기 사당.

[개설]

자은영당홍만조(洪萬朝)[1645~1725]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풍산홍씨(豊山洪氏)의 아산 지역 입향조로도 알려진 홍만조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종지(宗之), 호는 만퇴(晩退)이다.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 홍탁(洪𩆸)이고, 아버지는 현감 홍주천(洪柱天)이며, 어머니는 증 영의정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홍만조는 1669년(현종 10)에 생원시를 거쳐 성균관 유생이 되고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부터 형조판서, 좌참찬 등 여러 중앙 관직과 조선 8도 중 황해도를 제외한 7개 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1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었고 1722년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위치]

자은영당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다. 온천대로[국도 21호선] 장재지하차도 동쪽 약 300m 지점에서 남쪽으로 마을길[휴대세교길]로 접어들어 3㎞ 남짓 가면 세교2리 마을회관 남쪽의 낮은 언덕에 이른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100여m 가면 홍만조의 종손 집 바로 위에 자은영당이 있고, 바로 위쪽에 홍만조의 묘가 있다.

[변천]

자은영당의 최초 건립 시기는 확인되지 않으며 『자은영당집』의 기록에 의하면 200여 년 전이라고 한다. 1차 중수 시기를 보면 더 늦은 시기에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935년에 1차 중수가 있었고, 1968년과 1981년에 정비 보수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자은영당 본 건물만 있었으나 1968년 2차 중수 때 옆에 부속 건물인 추원각을 시멘트 벽돌로 지었다. 1981년에는 단청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때 ‘자은영당(自隱影堂)’이라는 이름을 짓고 편액을 만들어 걸었다. 이듬해인 1982년에 외삼문 격인 삼문을 세우고 ‘경모문(景慕門)’이라 하였으며 경역 둘레에 담을 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형태]

자은영당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도리식 건물로 홑처마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전툇간을 두고 있어서 정면의 전툇간은 툇마루를 만들었다. 양옆에 풍판을 달았고, 정면 정칸 위에 ‘자은영당’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자은영당은 경역 전체가 시멘트담으로 둘러져 있다. 외삼문 격인 경모문을 지나면 철제문이 있고 그 안 정면에 영당이 있으며 ‘자은영당’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영당의 바로 서쪽에는 추원각이 있다. 자은영당 주변은 잘 정비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 후손들이 모여 제향을 올리고 있다. 영당에 봉안하는 영정은 홍만조가 56세 때인 평안도관찰사 시기에 그린 영정을 일제강점기에 모사한 모사본이며 도난의 염려 때문에 제를 올릴 때만 건다. 원본은 훼손된 부분이 있어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자은영당만퇴당 홍만조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으로 풍산홍씨 남원공파 중 정익공파의 선현 숭배와 충효 사상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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