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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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優休牟涿國 |
영어공식명칭 | Uhyumotakgu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박찬규,배성수 |
[정의]
고대 원삼국 시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한 소국 중의 하나.
[명칭유래]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는 마한(馬韓)의 50여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 가운데 나오는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을 1930년대에 역사학자 이병도가 부천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즉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부천 지역은 고구려 때에는 주부토군(主夫吐郡), 통일신라 때에는 장제군(長堤郡)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휴모탁’의 발음이 주부토와 통하고, 뜻으로는 장제와 통한다고 하여 추정한 견해이다. 장제는 ‘긴 보뚝[물둑]’의 의미이다.
『삼국지』에 기록된 50여 마한 소국의 이름은 당시 중국의 고대 발음에 따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체로 우리나라의 한자음에 가깝다. 물둑을 가리키는 ‘모탁’이라는 지명은 사로국(斯盧國)의 6촌 가운데서도 보이고 있는데, 일명 모탁부(牟啄部)라고도 하는 모량부(牟梁部)가 그것이다. 이처럼 ‘모탁’이라는 지명을 가진 읍락(邑落)은 삼한 시대 지역 여러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우휴모탁국을 ‘물둑’이 많은 지역인 부천과 연관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우휴모탁국은 청동기 문화 및 초기 철기 문화를 배경으로 성립하여 마한 연맹체의 일원으로서 맹주국과 다양한 형태의 결속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후 토착 세력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성장을 지속하다가 백제에 복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휴모탁국의 규모나 사회 성격, 경제구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현재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우휴모탁국이 부천 지역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고강동·여월동의 적석환구유구나 집자리 유적을 통하여 우휴모탁국의 사회 성격이나 문화의 일부 모습을 유추해 볼 가능성은 있다. 물론 이들 유적의 시기와 우휴모탁국의 시기가 상당한 거리가 있어 직접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 유적은 우휴모탁국의 생활 모습이나 신앙의 원초적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실마리는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이병도의 ‘우휴모탁국 부천설’을 따른다면, 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의 영역인 경기도 부천시, 인천광역시 부평구·계양구·서구 일대는 우휴모탁국의 권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주부토’ 명칭이 우휴모탁국에서 연유했다면 부천과 인접한 계양산성에서 발견된 ‘주부토’로 볼 수 있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넓게 보자면 부천 권역이 우휴모탁국의 근거지였음을 알려 주는 물증이 되는 것이다.
또한 국어학적으로도 부천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면 이름인 ‘주화곶면(注火串面)’이 ‘주부토’와 관련되었다는 견해도 부천과 우휴모탁국의 연관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우휴모탁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부천설 외에 춘천설, 양주설, 계양설 등이 제기된 바 있다.
[관련기록]
『삼국지』「위서」 동이전 한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000리쯤 된다.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중략] [마한에는] 원양국·모수국·상외국·소석삭국·대석삭국·우휴모탁국·신분고국·백제국 [중략] 등 모두 50여 국이 있다. 큰 나라는 만여 가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 모두 10여 만 호이다.”
『삼국사기』「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장제군은 본래 고구려 주부토군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수주이고 거느리는 현이 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