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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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牛山里-順興安氏孝行談 |
이칭/별칭 | 안씨 창열각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안씨 창열각」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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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안씨 창열각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
성격 | 구비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안씨 부인|남편|홀아비|조택진 |
모티프 유형 | 효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입구에 있는 안씨 창열각에 얽힌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효열(孝烈)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안씨 창열각」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입구에는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열행(烈行)을 정려(旌閭)한 안씨 창열각(安氏彰烈閣)이 세워져 있다. 조선 중기 임란 전에 이곳에 살았던 안씨 부인은 이곳 옥동리(玉洞里) 신정 부락에 살던 가난한 소금 장수의 부인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옆집에 사는 홀아비에게 변을 당해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마음속에 심중은 갔지만 증거를 잡지 못하니 관가에 고발을 할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곧은 마음으로 남편의 원한을 갚을 날만을 고대하던 안씨 부인은 마침내 결심을 하고 그 홀아비에게 개가(改嫁)를 하였다. 이후 10년을 같이 살다가 드디어 어느 날 취중의 남편으로부터 당시의 살인 사건을 자백 받는데 성공하였다. 안씨 부인은 지체 없이 홀아비를 관가에 고발하여 처형케 하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이러한 열행이 알려져 정려가 내리게 되었다.
또 여각을 세우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300년 전에 창원 부사 조택진(趙宅鎭)이 명을 받아서 통영으로 가기 위해 말을 타고 가는데 이곳에 이르니 말굽이 떨어지지 않아 이상스레 여겨 주변을 살펴본즉 돌비 옆에 용모가 단정한 여인이 말을 하는 듯 하다가 사라지매 이는 반드시 열녀의 정령이 의지할 여각이 없음을 호소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고하기를 꼭 그 소원이 이루어지리라고 하니 말굽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곧 서둘러 관비(官費)로 정려각(旌閭閣)을 세우고 지방 관리로 하여금 수축(修築)과 제향(祭享)을 올리게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우산리의 순흥 안씨 효행담」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편의 원한을 갚기 위해 살인자의 집으로 스스로 시집을 가서 마침내 남편을 죽인 죄를 자백 받고 부인도 자결한다는 내용으로 흔히 ‘밝혀진 살인’ 등의 제목으로 민담에서 즐겨 이야기되는 화소이기도 하다.
순흥 안씨를 위한 창열각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 역시 ‘떨어지지 않는 말발굽’ 등의 제목으로 민담의 주요 모티프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우산리의 순흥 안씨 ‘효행담’에는 사실적인 면과 민담적 형식이 두루 혼재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장치는 안씨 부인의 효행을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