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4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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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鮮新聞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영록 |
[정의]
1946년 3월 1일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발간된 지방 신문.
[개설]
경상남도 지역 신문의 시초는 1909년 8월 19일 창간된 『경남 일보』이다. 2010년 7월 옛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 등 3개시가 통합한 창원시 지역 내에서는 1946년 3월 1일 창간된 『남선 신문』이 최초의 지방 신문이다.
[창간 경위]
『남선 신문』은 해방 후 마산에 1945년 12월 『동아 일보』, 『조선 일보』 등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부산에서 발행되는 『민주 중보』를 비롯해 『자유 민보』, 『부산 일보』, 『대중 신문』, 『인민 해방보』 등이 보급되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한성 일보』 등이 들어올 때 마산의 전직 언론인과 유지들이 마산에도 신문이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해 1946년 3월 1일 창간한 신문이다.
『남선 신문』은 불편부당 공정 언론의 육성, 자주독립 정신의 배양, 민족의 독특한 장기 발견과 육성, 대중 생활 개선과 농어촌 개량, 서양 문명의 수입과 흡수, 동아 문명의 연구와 통일 발표 등 6개항을 목표로 내걸었다.
[형태]
『남선 신문』은 1946년 3월 1일 창간 당시 옛 마산시 서성동 구 협동 인쇄소에 임시 사무소를 마련하였다. 당시 조선일보 마산 지국장 등을 지낸 김귀동이 초대 발행인 겸 부사장과 주필을 담당하였다. 신문을 만들고 보급하는 회사원은 10명이었고, 인쇄 시설은 평면 인쇄기 1대로, 신문 지면은 타블로이드판으로 3일 간격으로 발행되는 신문이었다.
신문이 나온 지 두 달여 만인 1946년 5월 5일에는 김종신이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사옥을 마산 장군동[구 선일 양조장]으로 옮기고 비로소 일간 신문으로 발행되었다.
그 후 좌익계와 우익계의 갈등 속에서 회사의 재정마저 어려워져 1947년 7월부터 신문을 내지 못하였다.
1947년 12월 김형윤이 판권을 인수해서 매주 2회, 3일 격간으로 지역 소식을 중심으로 종합지의 성격을 띠고 발간하였다. 이후 1948년 5월 30일 회사 건물을 시내 중앙동으로 옮기고, 신문 이름도 『남조선 민보』로 바꾸었다.
[변천과 현황]
『남선 신문』은 발간 이후 6차례에 걸쳐 제호를 바꾸었다. 1948년 5월 30일 『남조선 민보』로 바뀐 뒤, 다시 『마산 일보』[1950~1967], 『경남 매일 신문』[1967~1969], 『경남 매일』[1969~1980], 『경남 신문』[1981~현재]으로 제호를 변경하였다. 현재는 『경남 신문』이 『남선 신문』을 계승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46년 3월 1일 창간된 『남선 신문』은 통합 창원시 내 최초의 지방 신문으로 6차례 제호를 바꾸면서 현재까지 67년간 창원시민과 더불어 창원의 불침번 역할을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