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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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德里 |
영어공식명칭 | Gwangdeok-ri |
분야 | 지리/인문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광덕리는 진보면의 중앙부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광덕1리와 광덕2리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한, 읍동이 있다.
[명칭 유래]
마을이 자리 잡은 곳이 광덕산(廣德山) 밑이 되므로 광덕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신한(新漢)은 안동권씨(安東權氏)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와서 보니 그 모양이 한양과 닮았다 하여 새로운 한양이라는 의미로 신한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읍동(邑洞)은 조선시대에 진보현(眞寶縣)의 관아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송군 하리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읍내동과 신한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광덕동이라 하고 청송군 진보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군조례로 영양군 입암면 흥구동 일부를 진보면 광덕동에 통합하였으며, 1985년에는 광덕동이 광덕1동과 광덕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에 군조례에 의해 광덕동이 광덕리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광덕리의 중앙부를 반변천(半邊川)이 동서로 나누고 있다. 반변천을 기준으로 서쪽 지역은 광덕산(廣德山)[489m]의 동사면과 남사면에 해당하며, 주거 지역은 경사가 완만하면서 반변천의 퇴적작용의 영향을 받아 넓게 형성된 충적평야 부분에 형성되어 있다. 반변천의 동쪽 지역은 산지로서 거의 주거지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반변천은 영양군 북쪽에 솟아 있는 일월산(日月山)[1,219m]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청송군 진보면 부근의 많은 지류를 합하면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반변천은 진보면을 지나면서 심한 감입곡류를 이루고 하폭이 좁은 횡곡(橫谷)을 형성한다. 특히 광덕리 부분에서의 반변천은 태극 모양으로 휘돌며 흐르는데, 광덕2리 부근에서 크게 곡류하면서 광덕1리 동쪽 하안을 침식하여 급경사의 단애를 형성하고 있으며, 광덕2리의 남쪽 부분은 활주사면(滑走斜面)에 해당되어 넓은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한편 광덕산의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은 남류하면서 광덕저수지를 만들고, 그 아래의 평야에 용수를 공급하면서 반변천에 합류된다.
[현황]
행정리는 광덕1리와 광덕2리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면적은 4㎢이며, 인구는 전체 298가구에 639명[남자 345명, 여자 294명, 외국인 제외]이다. 동쪽과 북쪽 일부는 영양군 입암면 흥구리, 서쪽과 다른 북쪽 일부는 진보면 세장리, 남쪽은 진보면 진안리·각산리와 접하고 있다.
산지가 많은 진보면의 특성상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를 많이 짓는 편이나, 광덕리의 경우 너른 평지를 토대로 논농사의 비중이 높은 편이며 광덕세장길을 따라 열촌(列村)이 형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한과 읍동이 있다. 신한은 광덕세장길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읍동은 조선시대 진보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400여 년 전에는 백씨(白氏)들과 안씨(安氏)들이 거주했으나, 이후 안동권씨들이 많이 들어 왔다고 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진보향교(眞寶鄕校)와 청송 송만정(靑松松巒亭)이 있다. 진보향교는 1404년(태종 4)에 현유(賢儒)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는데,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청송 송만정은 안동권씨 송만공파의 정자로 1863년(철종 14) 건립되었으며, 2010년 8월 2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577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교정시설로 경북북부제1교도소, 경북북부제2교도소, 경북북부제3교도소, 경북직업훈련교도소가 있는데,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보호감호법을 제정한 뒤 1981년 광덕리에 청송제1보호감호소, 청송제2보호감호소, 청송제3보호감호소가 들어선 이후 그 기능을 하고 있다. 흉악범 및 강력범 등을 주로 수용하는 교도소의 역할 때문에 지역 이미지를 망친다는 불만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명칭 변경 요구로 2010년에 청송교도소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