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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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海黃氏府使公派所藏古文書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은영 |
작성 시기/일시 | 1894년 - 평해황씨 부사공파 소장 고문서 중 황경헌이 청송부에 제출한 호구단자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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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 시기/일시 | 1888년 - 평해황씨 부사공파 소장 고문서 중 황계응에게 벼슬을 내리고 황경헌, 황오채를 추증하는 교지 발급 |
발급 시기/일시 | 1902년 - 평해황씨 부사공파 소장 고문서 중 황청길에게 품계를 내리는 칙령 발급 |
소장처 | 평해황씨 부사공파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
발견|발굴처 | 평해황씨 부사공파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황계응|황경헌|황오채|황청길 |
용도 | 임명|보고 |
발급자 | 국왕 |
수급자 | 황계응|황경헌|황오채|청송부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평해황씨 부사공파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개설]
평해황씨 부사공파가 있는 청송읍 청운리는 평해황씨 청송 입향조인 황덕필(黃德弼)이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낙향했다가 중종 때에 정착한 곳이다. 평해황씨는 황덕필이 입향한 이래로 학자와 효자 등을 많이 배출하면서 청송을 대표하는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고문서 중 교지는 1888년 황계응(黃季應), 황경헌(黃景憲), 황오채(黃五彩)에게 벼슬을 내린 교지이고, 칙령은 1902년(광무 6) 황청길(黃淸吉)에게 품계를 내려준 문서이다. 호구단자는 황경헌이 청송부에 제출한 것이다.
[제작 발급 경위]
청송 입향조 황덕필의 10세손인 황계응이 1888년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에 임명되면서 3대 추증(追贈)이 되었는데, 황계응의 아버지 황경헌은 가선대부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兼同知義禁府事)에 추증되었으며, 증조할아버지 황오채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되었다. 증직 교지는 나라에서 이와 같은 벼슬을 내린 황계응, 황경헌, 황오채에게 발급된 교지이다. 칙령은 1902년 황청길의 나이가 88세이기에 수직(壽職)으로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내려준 것이다. 호구단자는 황덕필의 아버지인 황경헌이 51세 되었던 1834년[갑오]에 청송부에 제출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형태]
1888년 황경헌에게 발급된 증직 교지의 크기는 세로 53.7㎝, 가로 67.3㎝이며, 같은 해에 황오채에 발급된 증직 교지는 세로 54.0㎝, 가로 69.3㎝, 황계응에게 발급된 교지는 세로 53.7㎝, 가로 69.5㎝이다. 1902년 황청길에게 발급된 칙령은 세로 39.7㎝, 가로 56.8㎝이다. 황경헌이 청송부사에게 제출한 1834년 호구단자는 세로 40.8㎝, 가로 59.0㎝이다. 이들 교지와 호구단자는 낱장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교지는 1888년 황계응을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임명하고, 삼대 추증의 법식에 의거하여 황계응의 증조부 황오채를 통훈대부 장악원정, 아버지 황경헌을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하는 내용이다. 이 외에 1902년 88세인 황청길에게 수직으로 정3품 통정대부의 품계를 내리는 칙령과 1834년 청송부 부내 청운리에 거주하는 51세의 황경헌이 청송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호구단자에는 공생(貢生)[교생] 황경헌의 4대조와 부인 울진장씨(蔚珍張氏)[56세]의 4대조를 기재하고, 함께 살고 있던 아들 황계명(黃季明)[20세]과 그의 부인 안동임씨(安東林氏)[24세] 및 비(婢) 금열(今悅)[계해생]을 함께 기재하였다.
황경헌의 아버지는 공생 황석주(黃錫周)이며,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행용양위 부호군을 지낸 황오채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황태징(黃泰澄)이며, 외조부는 가선대부 임태석(林兌碩)으로 본관은 울진이다. 부인 울진장씨의 아버지는 학생 장재봉(張再封)이며, 할아버지는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 장한경(張漢經)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 장시만(張時萬)이며, 외할아버지는 학생 김만선(金萬善)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의의와 평가]
평해황씨 부사공파가 청송 내에서 사족으로서 재지적 기반을 제고해 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