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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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夢鳅 |
영어공식명칭 | Kim Mongchoo |
이칭/별칭 | 계상(季祥),빙암(氷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78년 - 김몽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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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김몽추 진무공신 녹훈 |
활동 시기/일시 | 1627년 - 김몽추 정묘호란 때 어가 호종 |
몰년 시기/일시 | 1634년 - 김몽추 사망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 |
부임|활동지 | 황주목 - 황해도 황주군 |
묘소|단소 | 금천동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의성 |
대표 관직 | 황주목판관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무신.
[개설]
김몽추(金夢鳅)[1578~1634]는 김한경(金漢卿)의 현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이괄(李适)의 난 때 계림군(鷄林君) 이수일(李守一)을 따라 적도를 토벌하여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올랐으며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옥포장(玉浦將)으로 전공을 세우니 임금이 거울을 하사했다. 청(淸)과의 화의(和議) 때 극간하다 삭탈관직되었으며 청이 물러간 후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에 이어 황주목사(黃州牧使)에 제수되었다.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계상(季祥), 호는 빙암(氷岩). 고조할아버지는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지양(芝陽) 김심(金深)이다. 할아버지는 소격서(昭格署) 참봉(參奉) 탁와(拓窩) 김세현(金世賢)이며, 아버지는 둔재(遯齋) 김응인(金應仁)[1536~1613]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어머니는 참봉 박홍(朴弘)의 딸인 숙부인(淑夫人)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6남 4녀의 자녀를 두었다.
김몽룡(金夢龍), 김몽량(金夢良), 김몽기(金夢麒), 김몽귀(金夢龜), 김몽린(金夢麟), 김몽추(金夢鰍)의 6형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이 가운데 김몽귀(金夢龜)와 김몽린(金夢麟)은 영천성(永川城) 수복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김몽추의 부인은 장사랑(將仕郎) 우경충(禹景忠)의 딸 숙부인(淑夫人)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활동 사항]
1624년(인종 2)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우고 진무공신(振武功臣)에 녹훈되었다. 1627년(인종 5) 정묘호란 때에 옥포장(玉浦將)이 되어 어가를 배종(陪從)하여 전선(戰船)으로 서울로 왔다. 이에 왕이 철경(鐵鏡)을 상으로 하사하였다. 청나라의 화의(和議) 시에 강력히 반대하여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러나 청나라가 물러간 후 다시 관직을 회복하고, 훈련원 판관을 제수하고, 외보(外補)로 통정대부(通政大夫) 황주목판관(黃州牧判官)을 겸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리 산67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효산(曉山) 이돈유(李敦裕)가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