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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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應晛 |
영어공식명칭 | Son Eunghyeon |
이칭/별칭 | 자임(子任),남계(南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564년 - 손응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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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1년 - 손응현 영천군 거여리로 이주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7월 - 손응현 영천성전투 참전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8월 - 손응현 자인현에서 일본군 격퇴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8월 - 손응현 경주성전투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손응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05년 - 손응현 고천서원 배향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592년~1598년 - 임진왜란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문천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
거주|이주지 | 경상도 영천군 거여리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
활동지 | 영천성 - 경상북도 영천시 |
활동지 | 자인현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활동지 | 경주성 - 경상북도 경주시 |
묘소 | 모계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모계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증(贈)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임(子任), 호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손희(孫曦), 어머니는 참봉(參奉)을 지낸 김태년(金台年)의 딸 월성김씨(月城金氏),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郎) 손세돈(孫世敦), 증조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손흔(孫昕),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조이관(曺以觀)의 딸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활동 사항]
손응현(孫應晛)[1564~1592]은 1564년(명종 19) 청송도호부 문천리(文川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충효(忠孝)’ 2자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성장해서는 김몽기(金夢麒)에게 학문을 배웠다. 1591년(선조 24) 영천군(永川郡) 거여리(巨余里)[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일대]로 이주하였다.
일찍이 손응현은 정몽주(鄭夢周)를 흠모하여, 그를 배향한 임고서원(臨皐書院)과 그가 낚시를 즐겼다는 조옹대(釣翁臺)를 자주 왕래하였다. 또한 거여리의 시내 남쪽에 정사(精舍)를 짓고, 스스로 호를 남계(南溪)라 한 후 이곳에서 학문을 닦는 데 힘썼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천군의 여러 선비들과 의병을 일으켰다. 손응현은 7월의 영천성(永川城) 수복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웠고, 8월에는 자인현(慈仁縣)[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곧이어 벌어진 경주성(慶州城)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행적을 엮은 『남계실기(南溪實紀)』가 전한다.
[묘소]
순절 후 전장에서 의관(衣冠)만 수습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모계리에 장사 지냈다.
[상훈과 추모]
경주성을 탈환한 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이 손응현의 공을 정부에 보고해 봉훈랑(奉訓郞)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에 증직되었다. 1705년(숙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에 건립된 고천서원(古川書院)에 배향되었다. 고천서원에는 손응현을 비롯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영천 지역의 여러 선비들이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