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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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夢麒 |
영어공식명칭 | Kim Monggi |
이칭/별칭 | 중상(仲祥),월계(月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65년 - 김몽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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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김몽기 영천성 수복전투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633년 - 김몽기 사망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592년~1598년 - 임진왜란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 |
활동지 | 영천성 - 경상북도 영천시 |
묘소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훈련원부정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개설]
김몽기(金夢麒)[1565~1633]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영천성(永川城) 수복전투와 경주성(慶州城)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전공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에 임명되었다.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상(仲祥), 호는 월계(月溪). 고조할아버지는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지양(芝陽) 김심(金深)이다. 할아버지는 소격서 참봉(昭格署參奉) 탁와(拓窩) 김세현(金世賢)이다. 김한경을 추모하는 도리 추원당(道里追遠堂)이 현재 청송군 현서면 도리 재동에 있으며, 도리 원도동에 김세현이 수학하던 지양정(芝陽亭)이 있다. 아버지는 둔재(遯齋) 김응인(金應仁)[1536~1613]으로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어머니는 참봉(參奉) 박홍(朴弘)의 딸인 숙부인(淑夫人)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6남 4녀의 자녀를 두었다.
김몽룡(金夢龍), 김몽량(金夢良), 김몽기(金夢麒), 김몽추(金夢鰍), 김몽귀(金夢龜), 김몽린(金夢麟)의 6형제는 모두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약하였는데, 김몽귀와 김몽린은 영천성 수복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김몽기의 부인은 생원(生員) 김효명(金孝命)의 딸 숙인(淑人)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아들 김정(金玎)은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판서(判書) 김진국의 딸 청풍김씨(淸風金氏)와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김몽기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으며, 화산군(化山君) 권응수(權應銖)를 따라 영천성 수복전투에 참전하였다. 원래 김몽기는 효도로 어버이를 모시고 벼슬에는 뜻이 없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친을 이별할 때 “장부는 집에서는 부형(父兄)을 모시고 나가서는 어른을 모신다고 했으니 난에 임하여 어찌 숨어 있겠습니까!” 하고는 부모를 피난시키고 의병을 모집했다.
영천성 수복전투에서 김몽기는 총독장군(總督將軍)이 되어 공격을 계획하고, 밤에는 피난한 부모님을 찾아보았다. 이로 인해 충과 효를 모두 갖추었다고 군중에서 칭송했다. 1592년(선조 25) 9월에는 경주성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울산 서생포(西生浦) 전투에도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전공으로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에 제수되었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月梅里)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후손 김상목(金相穆)이 유사(遺事)를 짓고,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1869~1943]이 묘갈명을 지었다.